터: 우리가 몰랐던 신비한 땅 이야기
민홍규 저 | 글로세움
책소개
산청 '기체험장'은 누가 왜 만들었는가!
터에도 눈이 있다. 이 터에서 만든 국새가 폐기되고 마지막 혈처를 다스리는 세 번째 바위가 잘못 놓여진 이후부터 이 터의 울음이 계속 되고 있는 듯하다. 이 터의 울음이 예사롭지만은 않다. 언젠가 이 터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어야겠다고 생각해왔지만 이제 그 때가 온 것이다. 더 이상 이 터가 누군가의 사욕으로 훼손되고 이용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마음과 터 스스로 앓고 있는 몸살을 모른 체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 글은 옥중에서 쓰여졌다. 이 책에 나온 이야기는 범부로서 이 터를 만나고, 터가 가진 기운을 일깨워 하나하나 모양새를 찾아가던 여정이다. 완벽한 모습을 갖추기 전에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으려 했던 비밀이야기이다.
저자소개
저자: 민홍규
민홍규는 말보다 실제 쓰이는 우리 예술 문화의 정립을 꿈꾸었다. 그는 5세 때 조부 민기식에게 서예를 배우고, 동교 민태식 선생에게서 한학을 수학했다. 경기대 회화과 교수 하영식, 대구대 회화과 교수 김원에게서 서양화와 동양화를 사사했다. 16세부터 석불 정기호 문하에서 옥새 동장(銅章)전각을 사사하며, 국새(소옥새)제작원리에 풍수나 동양학적 원리가 도입되는 것을 배운다.
젊은 시절 1980년 우리 예술을 정립하기 위해 계룡산 아래 상대리로 들어간다. 이때 고개 넘어 학하리에 주석하시던 탄허 스님의 가르침으로 풍수적 견해도 넓히게 된다. 이후 1990년 한국서예사를 바꾼다. 그해 2월 예술의전당 컨퍼런스홀에서 우리나라 현대서예가 시작됨을 선언한다. 또한 우리 미술사에 선(線)을 회화로 표현하는 원리를 정립하고 랍 아트(LAP ART)미술운동을 전개한다. 1996년 경기도 이천에서 잃어버린 옥새 복원에 매달려 경기도박물관에 기증하면서 왕권을 이은 우리나라의 정통성을 높이는 데 정성을 다했다.
2006년 4대 국새 국민공모에 인문전각과 뉴조각 등이 당선되었다. 잘 완성된 국새는 3년 동안 문제 없이 사용되었다. 어느 날 갑자기 국새가 잘못... 되었다며 3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하였고 지난해 9월 출소했다
책속으로
“숭례문에 불이 나면 아래에 있던 불의 성질이 화재를 따라 물 위로 솟구쳐 올라타며 나쁜 염준(錟)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변한 상태를 주역 64번째 화수미제(火水未濟) 괘라 한다. 큰물이 위의 불꽃(젊음)을 잡아먹는 괘이다. 그러나 나쁜 염준을 당해도 희망이 있다. 그 속에 좋은 염준으로 다시 돌릴 수 있는 이치를 스스로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세불은 우리 민족의 역사를 응축하여 이 땅에서 지천태시대를 실현할 구체적인 방책을 담는 그릇으로 4대 국새를 만들고 이 터를 조성하는 대역사를 시작한 것이다. 그가 잡목 우거진 평범한 산 중턱에 터를 잡고 세 개의 바윗돌을 찾아 안치하는 과정은 실로 성(誠), 그 자체이다. 그야말로 호랑이가 먹이를 노리듯 심신을 정일 집중하여 최선을 다하였다. 또한 겸손과 비움으로 천지와 사물의 기운에 감응하는 자세를 여지없이 보여주었다. 하늘과 땅이 감응하여 터를 찾아내고 바위를 구하였다. 마침내 하늘 기운을 받아내리는 석경과 땅기운을 분출하는 관문인 귀감석을 제 자리에 설치하였다.”
“지구 땅덩이는 그냥 무지한 무기물 덩어리가 아니다. 그 속에 수만 가지 생명을 낳아 기르는 큰 생명, 만 생명의 어머니이다. 그 생명의 기운 질서를 잘 파악해서 따르면 복이 내리고, 이를 거역하면 재앙이 내린다. 땅의 기운이 크면 클수록 복도 크고 재앙도 크다. 그것을 통찰했던 우리 조상은 그 이치를 풍수라는 이름으로 압축해서 후손에게 전했다. 수만 년을 숨어 있던 천장지비의 터를 찾아내어 그 기운으로 나라를 살리고 세상을 평화롭게 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무지렁이들은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땅의 기운을 훼손하여 버렸다.
중단된 작업은 산청군이 마무리하였다. 그러나 완전 엉터리로 만들어 버렸다. 가장 중요한 의미가 담긴 세 번째 바위 복석정은 마당 한쪽 구석으로 옮겨 지붕을 씌우고 ‘기 받는 돌’이라 간판을 세워놓았다. 바위가 본래 놓일 자리는 기가 맴도는 혈처이다. 민홍규가 얼마나 세심하게 그 자리를 잡았는데, 자문도 구하지 않고 아무렇게나 옮겨버린단 말인가. 그리고 그 바위를 기 받는 돌 정도로 우습게 만들어버린단 말인가! 등황전은 산청군이 ‘동의전(東醫殿)’이란 현판을 붙였다. 2013세계전통의약엑스포의 의미에 맞춘 것이다. 참으로 소인배의 짓이다.”
출판사 리뷰
숭례문 화재…잇단 대형 참사와 무관할까”
조선 건국의 초석을 다진 정도전은 1398년 숭례문을 건립했다. 숭례문에는 불의 조화를 뜻하는 대풍수의 비기(秘機)가 숨어 있다. 숭례문이 불타면 나라가 어지러워진다는 괘에 따라 화기를 제압하기 위해 ‘세로 현판’을 달았다.
1592년 숭례문에 화재가 발생했다. 보름 후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임금은 피란 가고 국토와 백성은 참혹하게 유린됐다. 1910년에는 숭례문 현판이 떨어졌다. 그 해 대한제국이 일본에 강제 합병되며 나라가 망했다. 일제강점기를 거쳐 분단과 전쟁을 겪었다.
2008년 2월 숭례문이 방화로 불에 탔다. 2009년부터 4대 국새가 유린 당하더니 결국 2010년 11월에는 국민화합과 국운융성, 통일의 비원(悲願)이 담긴 대한민국 4대 국새가 폐기 처분됐다. 그러자 공교롭게도 천안함이 침몰되더니(2010.3.26.), 이어서 태안 고교생 해병대 캠프 사고(2013.7.18), 경주 리조트 강당 붕괴(2014.2.17), 세월호 침몰(2014.4.16) 등 대형 참사가 잇따르고 있다. 아이러니 한 것은 이러한 사고의 희생자 대부분이 불꽃같은 젊은들이라는 점이다. 숭례문 화재부터 국새 폐기 그리고 이 터의 기바위가 일련의 잇단 참사와는 무슨 연관이 있을까.
경남 산청의 ‘기(氣)바위’는 누가 왜 놓았는가!
터에도 눈이 있다. 국새전각전에서 만든 대한민국 4대 국새가 폐기되고 혈처를 다스리는 거울바위 석경(石鏡), 거북바위 귀감석(龜鑑石), 솥바위 복석정(福石鼎) 중 세 번째 바위가 잘못 놓여진 이후부터 터의 울음이 계속 되고 있다.
터의 울음이 예사롭지 않다. 3년을 옥중에서 지내면서 4대 국새를 만든 세불 민홍규는 많이 생각했다. 언젠가 이 터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어야겠다고 생각해왔지만 때가 온 것이라 마음먹었다. 더 이상 이 터가 누군가의 사욕으로 훼손되고 이용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마음과 터 스스로 앓고 있는 몸살을 모른 체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은 옥중에서 쓰여졌다.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범부로서 이 터를 만나고, 터가 가진 기운을 일깨워 하나하나 모양새를 찾아가던 여정이다. 완벽한 모습을 갖추기 전에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으려 했던 비밀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를 말하는 것도 이 터가 시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한반도를 거대한 몸으로 가정하면, 불기운이 가장 큰 혈처는 백두대간 단전자리이다. 전국 산천을 떠돌다 적임지를 찾았다. 오행으로 토생금(土生金)을 부르는 터로 먼저 이곳의 땅 기운이 국새전각전을 지어 금(金) 기운의 대한민국 4대 국새를 만들도록 했다. 그리고 이 땅의 고단함을 처방하는 대길지(大吉地)로써 한반도에서 기(氣)가 가장 많이 뿜어져 나오는 혈처(穴處) 세 곳을 잡았다.
이곳에서 국새 제작뿐 아니라 세 개의 바위가 침을 놓듯이 혈자리에 바로 자리 잡게 될 때는 국운도 만개하고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터라고 생각했다.
세 개의 바위는 각각 성격이 있다. 석경은 하늘의 뜻을 담아내는 강기석(降氣石), 귀감석은 땅의 지력을 돋우는 응기석(應氣石), 복석정은 사람을 위해 풀어내는 정기석(精氣石)이다.
이 터의 세 혈처와 국새전각전, 등황전 등 비보(裨補) 건물은 서로 상응하도록 지어졌다. 국새 제작 외에 분정항례(分庭伉禮) 등 이 터 안에서 벌어질 여러 일들을 예상하여 정하였다. 전각전은 기 운행의 최종 건물이라 매우 중요하다.
마침내 국새를 제작할 터가 잡히고 국새전각전도 건립할 수 있게 되었다. 국운융성과 국민화합을 기원하는 4대 국새를 제작할 세 혈처도 찾아냈으니 틀은 잡힌 것이다. 이 터가 정말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줄 수 있는 영원한 쉼터가 될 수 있었으면 했다.
이 자리는 지리산 천왕봉을 축으로 화엄사 각황전과 서로 힘을 대등하게 조율하는 ‘큰오름(등황)’의 운장이 있다. 서로 좋게 한다는 힘이다. 그래서 등자(?子·말등자)요, 평성을 잡아주는 비보 건물의 이름으로 등황전(騰皇殿)이 되어야 하는 이유다.
이 터는 세 개의 바위를 제 혈처에 놓는데 있다. 그러려면 기운을 잡는 비보 건물도 제자리에 잡혀야 완성되었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민홍규가 모함을 받게 되자 산청군은 2013세계전통의약엑스포 개최를 이유로 복석정을 엉뚱한 곳에 안치했다. 여기에다 등황전도 동의전이라는 이름으로 바꾸고 오색 칠을 해 마치 사찰 같이 만들어 놨다. 이런 까닭에 이 터는 아직 미완성이다.
민홍규가 국새와 세 개의 바위를 굳이 이 터에서 완성하려 했던 이유는 4대 국새에 담은 의미를 실현시켜 줄 수 있는 힘과 이 땅에 다가올 어려움을 막으려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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