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미숙 지음 | 판형 152×215 |면수 232면
분야 역사, 한국사 | 발행일 2020년 7월 1일
ISBN 979-11-86578-84-1 03910 | 값 15,000원


■ 책 소개

왕의 사랑을 받고, 왕을 낳았지만
결코 왕비가 될 수 없었던 칠궁의 후궁들을 만나다

세상사를 비롯 역사에서도 누군가 망하면 누군가는 흥한다는 말이 맞나 보다. 왕비가 왕위를 계승할 왕자를 낳지 못하면 후궁이 낳은 아들이 왕위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사당인 종묘에는 조선의 왕과 왕비, 그리고 죽은 후 왕으로 추존된 왕과 왕비의 신주가 모셔져 있다. 그 다음으로 큰 사당이 칠궁이다. 칠궁에는 조선의 왕을 낳았으나 왕비가 되지 못한 7명 후궁들의 신주가 모셔져 있다. 그들은 왕이 끔찍이 사랑했던 후궁들로 왕을 낳았지만 끝내 왕비에는 오르지 못한 비운의 여인들이다. 그래서 이들 후궁들의 이야기는 흥미롭다. 왕을 낳은 후궁들은 살아서는 왕을 낳지 못한 왕비들보다 훨씬 더 많이 왕 곁에 잠들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왕의 사랑을 받았다 해도 죽어서는 왕비가 아닌 이상 왕 곁에는 얼씬도 못했다. 신주도 왕 곁에 모셔질 수 없었다. 국법이 왕보다 무서웠으니 감히 엄두도 못 낼 일이었다. 이 책에서는 살아서는 가장 행복했을지도 모를, 그러나 왕비의 자리에 오르지 못한 설움을 간직한 채 잠들었을 이들 칠궁의 후궁들을 한 명 한 명 만나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나누어 본다.

 

■ 출판사 서평

종묘 다음으로 큰 사당 칠궁
왕을 낳은 7명 후궁들의 신주를 모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사당인 종묘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훈정동 1-2번지에 위치하고 있는데 그곳에는 조선의 왕과 왕비, 그리고 죽은 후 왕으로 추존된 왕과 왕비의 신주가 모셔져 있다.
그 다음으로 큰 사당이 바로 칠궁이다. 칠궁은 조선의 왕을 낳은 7명의 후궁들 신주가 모셔져 있다. 그들은 왕이 끔찍이 사랑했던 후궁들로 왕을 낳았지만 끝내 왕비에는 오르지 못했다. 왕의 어머니로만 만족해야 했던 7명의 후궁들 신주가 모셔져 있는데 서울특별시 종로구 궁정동 1-1번지로 청와대 서쪽에 자리하고 있다.
칠궁은 원래 제21대 왕 영조의 생모 숙빈 최씨의 육상궁 자리였다. 무수리 출신으로 알려져 있는 그녀는 숙종의 후궁이 되어 조선의 최장수 왕이자 최장기 집권왕이었던 영조를 낳았다. 어찌 보면 왕을 낳은 후궁들 7명은 영조와 어머니 숙빈 최씨의 덕을 본 셈이다. 숙빈 최씨의 사당이 있던 자리로 모두 옮겨와 오늘날에도 대접을 받고 있으니 하는 말이다.
그 후 육상궁은 1908년 7월 23일 왕과 추존왕의 생모 5명의 신주들을 모아 봉안하면서 육궁이 되었다. 먼저 1870년에 영조의 제1후궁 정빈 이씨의 연호궁이 옮겨와 육상궁과 합사되었고, 1908년에는 칠궁에서 가장 선배인 선조의 제2후궁 인빈 김씨의 저경궁과 더불어 숙종의 후궁 희빈 장씨의 대빈궁이 입주하였다. 이어서 영조의 제2후궁 영빈 이씨의 선희궁, 정조의 후궁 수빈 박씨의 경우궁이 옮겨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1929년 고종의 후궁 순헌황귀비 엄씨의 덕안궁이 옮겨와 칠궁이 되었다.
칠궁에 신주를 모신 왕을 낳은 후궁들 7명은 그나마 행운이다. 왕비가 낳지 못한 왕을 낳았으니 하는 말이다. 그래도 그들은 왕비가 되지 못한 것이 억울해 죽어서도 잠 못 이루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신이 낳은 아들이 왕이 된 것만 해도 가슴이 벅차고도 남을 일이 아닌가 싶다. 그들은 왕비보다 왕의 사랑을 더 많이 받았을 것은 물론이다. 반면 왕비들은 왕을 낳은 후궁들로 인해 허구한 날 눈물로 밤을 지새웠을 것이다. 후궁의 몸으로 왕의 어머니가 된 것만 해도 행운 중의 행운이요, 영광 중의 영광일 것이다.

누군가 망하면 누군가는 흥한다
적자가 아닌 서자가 왕이 되다

왕비가 왕위를 계승할 왕자를 낳지 못하면 후궁이 낳은 아들이 왕위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제1대 왕 태조부터 제13대 왕 명종까지는 계속 왕과 왕비 사이에서 태어난 적자가 왕위를 이었다. 그런데 명종이 후사를 남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자 적자만이 물려받던 왕위를 후궁이 낳은 서자가 물려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명종과 인순왕후 심씨 사이에 순회세자가 태어났지만 13세에 요절하는 바람에 적통의 시대가 막을 내렸다. 더 이상 왕비에게서 왕자가 탄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명종이 서자들에게 희망의 물꼬를 터준 셈이다.
명종이 세상을 뜬 뒤 제11대 왕 중종과 그의 후궁 창빈 안씨 사이에서 태어난 덕흥대원군의 3남 하성군이 제14대 왕 선조로 즉위하게 되었다. 적통에서 방계 혈통인 서손이 왕위를 잇게 되었다. 서자도 아닌 서자가 낳은 아들, 서손이 왕위를 물려받게 된 것이다.
명종에 이어 방계 혈통으로 왕위에 오른 선조도 적통에게 왕위를 물려주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선조에게는 유일한 적자로 영창대군이 있었다. 하지만 선조가 세상을 떠날 때 영창대군의 나이가 3세밖에 안 되어 왕위를 이어받지 못했다.
선조의 원비 의인왕후 박씨는 아예 자녀를 낳지 못하는 석녀로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다행히 계비로 맞이한 인목왕후 김씨가 고맙게도 선조의 적자로 영창대군을 낳았다. 그러나 영창대군이 너무 어린 나이에 선조가 세상을 뜨는 바람에 적자에게 왕위를 이어주려던 선조의 꿈이 무산되고 말았다.
그 결과 선조의 제1후궁 공빈 김씨의 소생인 광해군에게 왕의 자리가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서자였던 광해군이 가까스로 34세의 나이에 선조의 뒤를 이어 조선의 제15대 왕이 되었다.
하지만 1623년 3월 선조의 또 다른 후궁 인빈 김씨의 아들 정원군의 맏아들 능양군이 반정을 주도하여 이복 삼촌인 광해군을 몰아내고 제16대 왕으로 등극하였다.
그로 인하여 선조의 제1후궁으로 광해군을 낳은 공빈 김씨는 실제 왕의 어머니가 되어 좋았다가 말았고, 선조의 제2후궁 인빈 김씨는 손자인 인조 덕에 추존왕의 어머니가 되어 종묘 다음으로 큰 사당인 칠궁에 신주가 모셔지게 되었다. 그녀의 손자가 왕이 되면서 아들 정원군이 추존왕이 되었기 때문이다.
세상사를 비롯 역사에서도 누군가 망하면 누군가는 흥한다는 말이 맞나 보다. 그야말로 광해군의 어머니 공빈 김씨는 망하고, 추존왕 원종의 어머니이자 인조의 할머니인 인빈 김씨는 흥하게 되었다. 광해군을 낳은 공빈 김씨는 아들 광해군이 폐위된 후 복위되지 못한 채 죽는 바람에 비참한 신세가 되고 말았다.

칠궁의 공간은 좁다
하지만 후궁들의 삶은 무엇보다 흥미롭다

조선의 왕비들 이야기 못지않게 왕을 낳은 후궁들 이야기 또한 흥미롭다. 비록 칠궁의 공간은 좁지만 왕을 낳고도 왕비가 되지 못한 후궁들의 사연은 왕 곁에 신주가 나란히 모셔진 종묘의 왕비들 사연 못지않은 것이다. 어쩌면 왕을 낳아 왕의 어머니가 되었으면서도 왕비는커녕 죽어서도 왕 곁에 잠들 수도 없었던 후궁들의 이야기가 왕비들보다 더 흥미진진할지도 모르겠다. 칠궁에는 광해군의 어머니 공빈 김씨가 가장 웃어른이 될 뻔했는데 광해군이 폐위되는 바람에 신주조차 모셔지지 못했다. 대신 선조의 후궁인 인빈 김씨가 제일 어른이 되어 저경궁에 신주가 자리하고 있다. 칠궁에 신주가 모셔질 뻔했던 광해군의 어머니이자 선조의 제1후궁 공빈 김씨의 이야기도 왕을 낳은 후궁들 이야기에 포함시켰다.
칠궁에 신주가 모셔져 있는 7명의 후궁들 중 유일하게 왕비의 자리에 올랐던 후궁이 있다. 바로 희빈 장씨다. 그러나 그녀는 온갖 비행으로 끝내 폐비가 되어 후궁으로 강등되고 말았다. 그나마 연산군의 어머니처럼 서인으로 강등되지 않은 것은 그야말로 천운이다. 희빈 장씨 이후에는 후궁은 다음 보위를 이을 왕을 낳았어도 결코 왕비에 오를 수 없었다. 희빈 장씨의 악행에 질려버린 숙종이 아예 국법을 고쳐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니 왕비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왕비의 자리를 넘볼 수 없었고 후궁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아무튼 이 책에서는 후궁의 몸으로 왕을 낳았지만 왕비가 되지 못했던 칠궁의 여인들을 한 명 한 명 만나 본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 본문 속으로

조선왕조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상하게 맏아들인 장남이 있어도 차남이 왕위를 이어받은 경우가 많았다. 27명의 조선왕들 중 맏아들은 문종, 단종, 연산군, 인종, 인조, 현종, 숙종, 경종, 헌종 등 9명뿐이다. 이들 중 적자는 7명이다. 세종은 셋째 아들로 왕위를 이어받은 후 어려움을 겪어서인지 장남이 왕위를 계승해야 한다는 원칙을 세워 일찌감치 자신의 장남 문종을 세자로 책봉하였다. 그러나 세월을 거듭하면서 장남은커녕 적자에게 왕위를 물려주기도 어려웠다. 생각보다 많은 왕비들이 왕자를 생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공빈 김씨가 낳은 아들 중 차남인 광해군이 왕이 된 것만 봐도 그렇다.

-<왕을 낳았지만 칠궁에 들지 못한 비운의 후궁> 중에서

중인 집안 출신으로 궁녀가 되어 입궁한 장씨는 희빈에 오른 것만 해도 영광이었을 텐데 거기에 만족하지 않았다. 급기야 희빈 장씨는 숙종의 제1계비인 인현왕후 민씨를 모함하여 몰아내고 왕비의 자리에 오르고자 했다. 당시 숙종은 그녀에게 푹 빠져 헤어나지를 못했다. 숙종은 희빈 장씨를 빈으로 승격시킨 다음 왕자도 낳지 못하고, 자신의 사랑도 받지 못하고 있던 제1계비 인현왕후 민씨를 폐위시켰다. 그리고 희빈 장씨를 왕비로 책봉하기에 이르렀다. 그녀는 2명의 왕비가 낳지 못한 아들을 낳음으로써 궁녀에서 왕비까지 초고속으로 신분 상승하였다. 궁녀 출신이 왕비에 오른 경우는 희빈 장씨가 처음이었다.

-<궁녀에서 왕비까지 초고속 승차한 후궁> 중에서

숙빈 최씨가 낳은 3명의 아들 중 영조만 홀로 살아남았다. 그렇지만 열 아들 부럽지 않을 그녀다. 그녀가 세상을 떠났어도 하나 남은 아들 영조는 왕의 자리에 올라 조선의 군주 역할을 늠름히 해나갔다. 영조의 재위 기간이 52년에 가까운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519년 동안 이어진 조선의 역사 중 영조가 10퍼센트 가량을 만들어냈다. 영조는 명도 길어 다른 왕들의 2배 이상을 살았다. 그가 83세에 생을 접었으니 하는 말이다.

-<무수리 출신으로 최장수 왕을 낳은 후궁> 중에서

수빈 박씨는 왕을 낳아 칠궁에 신주가 모셔진 후궁들 중 유일하게 정식으로 간택을 통해 후궁으로 책봉된 왕의 여인이다. 나머지 6명은 모두 궁녀 출신으로 왕의 승은을 입으면서 후궁 자리에 오른 여인들이다. 궁녀 출신이 실제로 왕비의 자리에 오른 경우는 희빈 장씨뿐이지만 궁녀 출신이 후궁이 된 사례는 많았다. 그 궁녀 출신의 후궁들이 낳은 아들이 왕위에 오른 경우도 많다. 왕을 낳지 못한 왕비들이 오히려 그들을 부러워했을 것이다.

-<삼간택 거친 성품 온화한 후궁> 중에서

인빈 김씨는 참으로 운이 좋게 추존왕의 어머니가 되었다. 그녀의 아들 정원군이 중종의 아들 덕흥군처럼 대원군에 추숭되었다면 후궁인 창빈 안씨처럼 대원군의 어머니가 되었을 뿐 신주는 칠궁에 모셔지지 못했을 것이다. 아무튼 인빈 김씨는 손자를 잘 둔 덕분에 후세까지 극진한 대접을 받고 있다.

-<인생의 만추를 맛본 후궁> 중에서

양자로 입적된 정조가 1776년 왕이 되자 정빈 이씨는 하루 아침에 왕을 낳은 어머니가 되는 행운을 얻었다. 그에 따라 정빈 이씨에게는 온희라는 시호와 수길원의 원호, 연호궁의 궁호가 추상되었다. 정빈 이씨는 아들을 낳고 일찍 세상을 떠났지만 죽은 후 그녀의 신분은 수직 상승을 거듭하여 추존왕의 어머니에, 왕의 할머니까지 되었다. 이 모든 것이 그녀의 지아비인 영조의 명에 의해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가 효장세자의 양자로 입적된 덕분이다.

-<꽃대궐 구경도 못하고 세상 뜬 후궁> 중에서

■ 지은이

홍미숙

1959년 경기 화성에서 태어나 1995년 수필 <어머니의 손>으로 문단에 데뷔하면서 적극적으로 작품 활동을 펼쳤다. 신문을 비롯한 여러 문학전문지에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그동안 출판한 작품집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영광도 차지했으며, 교보문고에서 ‘화제의 신간’으로 선정되어 몇 달 동안 특별 전시 판매되었고, ‘부모님을 위한 사랑 가득한 도서’와 ‘일상의 행복을 찾아서’란 테마북으로도 선정·판매되었다. 무엇보다 전국수능모의고사와 외고입시 문제 등에 작품의 전문이 실리면서 지문으로 출제되었다. 2003년부터 국정교과서에 이어 검인정교과서(중학교 3학년 2학기 국어교과서)에 작품 〈신호등〉이 수록되었다.
KBS <주부 세상을 말하다>라는 생방송 프로에서 작가로서의 행복론에 대한 이야기를 담담하게 펼친 바 있다. 요즘은 역사공부를 하면서 역사책을 쓰고 있으며, 일반 독자와 학생을 대상으로 학교 및 도서관, 평생학습원, 국방부 등에서 조선왕조 이야기와 수필 쓰기 강의를 하고 있다. 수필집으로 《그린벨트 안의 여자》, 《추억이 그리운 날에는 기차를 타고 싶다》, 《마중 나온 행복》, 《작은 꽃이 희망을 피운다》, 《희망이 행복에게》, 《나에게 주는 선물》, 《웃음꽃 피다》, 《그동안 잊고 살았던 너에게》 등이 있으며 역사책으로 《왕 곁에 잠들지 못한 왕의 여인들》, 《사도, 왕이 되고 싶었던 남자》, 《조선이 버린 왕비들》, 《왕이 되지 못한 비운의 왕세자들》이 있다.

 

■ 목차

글을 시작하며 - 왕이 끔찍이 사랑한 왕을 낳은 8명의 후궁들을 만나다


1부 실제 왕을 낳은 칠궁의 후궁들

왕을 낳았지만 칠궁에 들지 못한 비운의 후궁
공빈 김씨(제14대 왕 선조의 후궁) | 제15대 왕 광해군의 어머니

궁녀에서 왕비까지 초고속 승차한 후궁
대빈궁의 희빈 장씨(제19대 왕 숙종의 후궁) | 제20대 왕 경종의 어머니

무수리 출신으로 최장수 왕을 낳은 후궁
육상궁의 숙빈 최씨(제19대 왕 숙종의 후궁) | 제21대 왕 영조의 어머니

삼간택 거친 성품 온화한 후궁
경우궁의 수빈 박씨(제22대 왕 정조의 후궁) | 제23대 왕 순조의 어머니


2부 추존왕을 낳은 칠궁의 후궁들

인생의 만추를 맛본 후궁
저경궁의 인빈 김씨(제14대 왕 선조의 후궁) | 추존왕 원종의 어머니


꽃대궐 구경도 못하고 세상 뜬 후궁
연호궁의 정빈 이씨(제21대 왕 영조의 후궁) | 추존왕 진종의 어머니

손자에게 죄인이 된 후궁
선희궁의 영빈 이씨(제21대 왕 영조의 후궁) | 추존왕 장조의 어머니

민비를 배신하고 승은을 입은 후궁
덕안궁의 순헌황귀비 엄씨(제26대 왕 고종의 후궁) | 영친왕의 어머니


부록

1 <조선왕계도>
2 <조선왕릉 42기>
3 <조선의 원 14기>
4 <조선의 대원군 묘 3기 >
5 <태조의 4대조 왕릉 4기>
6 <조선왕릉 상설도>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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