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 우리가 몰랐던 신비한 땅 이야기
민홍규 저 | 글로세움

 

책소개
산청 '기체험장'은 누가 왜 만들었는가!

터에도 눈이 있다. 이 터에서 만든 국새가 폐기되고 마지막 혈처를 다스리는 세 번째 바위가 잘못 놓여진 이후부터 이 터의 울음이 계속 되고 있는 듯하다. 이 터의 울음이 예사롭지만은 않다. 언젠가 이 터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어야겠다고 생각해왔지만 이제 그 때가 온 것이다. 더 이상 이 터가 누군가의 사욕으로 훼손되고 이용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마음과 터 스스로 앓고 있는 몸살을 모른 체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 글은 옥중에서 쓰여졌다. 이 책에 나온 이야기는 범부로서 이 터를 만나고, 터가 가진 기운을 일깨워 하나하나 모양새를 찾아가던 여정이다. 완벽한 모습을 갖추기 전에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으려 했던 비밀이야기이다.

저자소개
저자: 민홍규

민홍규는 말보다 실제 쓰이는 우리 예술 문화의 정립을 꿈꾸었다. 그는 5세 때 조부 민기식에게 서예를 배우고, 동교 민태식 선생에게서 한학을 수학했다. 경기대 회화과 교수 하영식, 대구대 회화과 교수 김원에게서 서양화와 동양화를 사사했다. 16세부터 석불 정기호 문하에서 옥새 동장(銅章)전각을 사사하며, 국새(소옥새)제작원리에 풍수나 동양학적 원리가 도입되는 것을 배운다.

젊은 시절 1980년 우리 예술을 정립하기 위해 계룡산 아래 상대리로 들어간다. 이때 고개 넘어 학하리에 주석하시던 탄허 스님의 가르침으로 풍수적 견해도 넓히게 된다. 이후 1990년 한국서예사를 바꾼다. 그해 2월 예술의전당 컨퍼런스홀에서 우리나라 현대서예가 시작됨을 선언한다. 또한 우리 미술사에 선(線)을 회화로 표현하는 원리를 정립하고 랍 아트(LAP ART)미술운동을 전개한다. 1996년 경기도 이천에서 잃어버린 옥새 복원에 매달려 경기도박물관에 기증하면서 왕권을 이은 우리나라의 정통성을 높이는 데 정성을 다했다.

2006년 4대 국새 국민공모에 인문전각과 뉴조각 등이 당선되었다. 잘 완성된 국새는 3년 동안 문제 없이 사용되었다. 어느 날 갑자기 국새가 잘못... 되었다며 3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하였고 지난해 9월 출소했다

책속으로
 “숭례문에 불이 나면 아래에 있던 불의 성질이 화재를 따라 물 위로 솟구쳐 올라타며 나쁜 염준(錟)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변한 상태를 주역 64번째 화수미제(火水未濟) 괘라 한다. 큰물이 위의 불꽃(젊음)을 잡아먹는 괘이다. 그러나 나쁜 염준을 당해도 희망이 있다. 그 속에 좋은 염준으로 다시 돌릴 수 있는 이치를 스스로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세불은 우리 민족의 역사를 응축하여 이 땅에서 지천태시대를 실현할 구체적인 방책을 담는 그릇으로 4대 국새를 만들고 이 터를 조성하는 대역사를 시작한 것이다. 그가 잡목 우거진 평범한 산 중턱에 터를 잡고 세 개의 바윗돌을 찾아 안치하는 과정은 실로 성(誠), 그 자체이다. 그야말로 호랑이가 먹이를 노리듯 심신을 정일 집중하여 최선을 다하였다. 또한 겸손과 비움으로 천지와 사물의 기운에 감응하는 자세를 여지없이 보여주었다. 하늘과 땅이 감응하여 터를 찾아내고 바위를 구하였다. 마침내 하늘 기운을 받아내리는 석경과 땅기운을 분출하는 관문인 귀감석을 제 자리에 설치하였다.”


“지구 땅덩이는 그냥 무지한 무기물 덩어리가 아니다. 그 속에 수만 가지 생명을 낳아 기르는 큰 생명, 만 생명의 어머니이다. 그 생명의 기운 질서를 잘 파악해서 따르면 복이 내리고, 이를 거역하면 재앙이 내린다. 땅의 기운이 크면 클수록 복도 크고 재앙도 크다. 그것을 통찰했던 우리 조상은 그 이치를 풍수라는 이름으로 압축해서 후손에게 전했다. 수만 년을 숨어 있던 천장지비의 터를 찾아내어 그 기운으로 나라를 살리고 세상을 평화롭게 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무지렁이들은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땅의 기운을 훼손하여 버렸다.

중단된 작업은 산청군이 마무리하였다. 그러나 완전 엉터리로 만들어 버렸다. 가장 중요한 의미가 담긴 세 번째 바위 복석정은 마당 한쪽 구석으로 옮겨 지붕을 씌우고 ‘기 받는 돌’이라 간판을 세워놓았다. 바위가 본래 놓일 자리는 기가 맴도는 혈처이다. 민홍규가 얼마나 세심하게 그 자리를 잡았는데, 자문도 구하지 않고 아무렇게나 옮겨버린단 말인가. 그리고 그 바위를 기 받는 돌 정도로 우습게 만들어버린단 말인가! 등황전은 산청군이 ‘동의전(東醫殿)’이란 현판을 붙였다. 2013세계전통의약엑스포의 의미에 맞춘 것이다. 참으로 소인배의 짓이다.”

출판사 리뷰
숭례문 화재…잇단 대형 참사와 무관할까”
조선 건국의 초석을 다진 정도전은 1398년 숭례문을 건립했다. 숭례문에는 불의 조화를 뜻하는 대풍수의 비기(秘機)가 숨어 있다. 숭례문이 불타면 나라가 어지러워진다는 괘에 따라 화기를 제압하기 위해 ‘세로 현판’을 달았다.
1592년 숭례문에 화재가 발생했다. 보름 후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임금은 피란 가고 국토와 백성은 참혹하게 유린됐다. 1910년에는 숭례문 현판이 떨어졌다. 그 해 대한제국이 일본에 강제 합병되며 나라가 망했다. 일제강점기를 거쳐 분단과 전쟁을 겪었다.
2008년 2월 숭례문이 방화로 불에 탔다. 2009년부터 4대 국새가 유린 당하더니 결국 2010년 11월에는 국민화합과 국운융성, 통일의 비원(悲願)이 담긴 대한민국 4대 국새가 폐기 처분됐다. 그러자 공교롭게도 천안함이 침몰되더니(2010.3.26.), 이어서 태안 고교생 해병대 캠프 사고(2013.7.18), 경주 리조트 강당 붕괴(2014.2.17), 세월호 침몰(2014.4.16) 등 대형 참사가 잇따르고 있다. 아이러니 한 것은 이러한 사고의 희생자 대부분이 불꽃같은 젊은들이라는 점이다. 숭례문 화재부터 국새 폐기 그리고 이 터의 기바위가 일련의 잇단 참사와는 무슨 연관이 있을까.

경남 산청의 ‘기(氣)바위’는 누가 왜 놓았는가!

터에도 눈이 있다. 국새전각전에서 만든 대한민국 4대 국새가 폐기되고 혈처를 다스리는 거울바위 석경(石鏡), 거북바위 귀감석(龜鑑石), 솥바위 복석정(福石鼎) 중 세 번째 바위가 잘못 놓여진 이후부터 터의 울음이 계속 되고 있다.
터의 울음이 예사롭지 않다. 3년을 옥중에서 지내면서 4대 국새를 만든 세불 민홍규는 많이 생각했다. 언젠가 이 터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어야겠다고 생각해왔지만 때가 온 것이라 마음먹었다. 더 이상 이 터가 누군가의 사욕으로 훼손되고 이용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마음과 터 스스로 앓고 있는 몸살을 모른 체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은 옥중에서 쓰여졌다.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범부로서 이 터를 만나고, 터가 가진 기운을 일깨워 하나하나 모양새를 찾아가던 여정이다. 완벽한 모습을 갖추기 전에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으려 했던 비밀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를 말하는 것도 이 터가 시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한반도를 거대한 몸으로 가정하면, 불기운이 가장 큰 혈처는 백두대간 단전자리이다. 전국 산천을 떠돌다 적임지를 찾았다. 오행으로 토생금(土生金)을 부르는 터로 먼저 이곳의 땅 기운이 국새전각전을 지어 금(金) 기운의 대한민국 4대 국새를 만들도록 했다. 그리고 이 땅의 고단함을 처방하는 대길지(大吉地)로써 한반도에서 기(氣)가 가장 많이 뿜어져 나오는 혈처(穴處) 세 곳을 잡았다.
이곳에서 국새 제작뿐 아니라 세 개의 바위가 침을 놓듯이 혈자리에 바로 자리 잡게 될 때는 국운도 만개하고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터라고 생각했다.
세 개의 바위는 각각 성격이 있다. 석경은 하늘의 뜻을 담아내는 강기석(降氣石), 귀감석은 땅의 지력을 돋우는 응기석(應氣石), 복석정은 사람을 위해 풀어내는 정기석(精氣石)이다.
이 터의 세 혈처와 국새전각전, 등황전 등 비보(裨補) 건물은 서로 상응하도록 지어졌다. 국새 제작 외에 분정항례(分庭伉禮) 등 이 터 안에서 벌어질 여러 일들을 예상하여 정하였다. 전각전은 기 운행의 최종 건물이라 매우 중요하다.
마침내 국새를 제작할 터가 잡히고 국새전각전도 건립할 수 있게 되었다. 국운융성과 국민화합을 기원하는 4대 국새를 제작할 세 혈처도 찾아냈으니 틀은 잡힌 것이다. 이 터가 정말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줄 수 있는 영원한 쉼터가 될 수 있었으면 했다.
이 자리는 지리산 천왕봉을 축으로 화엄사 각황전과 서로 힘을 대등하게 조율하는 ‘큰오름(등황)’의 운장이 있다. 서로 좋게 한다는 힘이다. 그래서 등자(?子·말등자)요, 평성을 잡아주는 비보 건물의 이름으로 등황전(騰皇殿)이 되어야 하는 이유다.
이 터는 세 개의 바위를 제 혈처에 놓는데 있다. 그러려면 기운을 잡는 비보 건물도 제자리에 잡혀야 완성되었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민홍규가 모함을 받게 되자 산청군은 2013세계전통의약엑스포 개최를 이유로 복석정을 엉뚱한 곳에 안치했다. 여기에다 등황전도 동의전이라는 이름으로 바꾸고 오색 칠을 해 마치 사찰 같이 만들어 놨다. 이런 까닭에 이 터는 아직 미완성이다.
민홍규가 국새와 세 개의 바위를 굳이 이 터에서 완성하려 했던 이유는 4대 국새에 담은 의미를 실현시켜 줄 수 있는 힘과 이 땅에 다가올 어려움을 막으려는 데 있다.

 

누가 국새를 삼켰는가: 우리가 모르는 대한민국 4대 국새의 비밀
조정진 저 | 글로세움

 

 

책소개
국새는 민홍규가 만들었고 한 나라의 장인이 만든, 나라를 위한 순수한 마음이 담긴 대한민국의 상징물이다. 과거 왕조시대 땐 절대 권력의 상징이었다. 국새는 한 나라의 도장 이상의 의미가 있고, 나라의 흥망성쇠를 따지는 귀한 물건임에 틀림없다. 이러한 국새를 가지고 장난친 국새사건의 연루자들은 반드시 재조사를 통해 진실을 밝혀 엄벌해야 한다. 이 책은 일련의 사건을 통해 인간의 끝없는 탐욕과 행정부와 사법부의 엉터리 수사의 문제점, 허위의식 등을 고발하고자 한다. 그리하여 정부기록원 수장고에 잠들어 있는 4대 국새의 권위를 회복하고, 대한민국의 실추된 명예를 되찾아주고자 한다.


저자 소개
저자: 조정신
'세계일보' 논설위원. 서강대 국문과·언론대학원, 북한대학원대학교 박사과정에서 공부했다. 1988년 기자 생활을 시작해 '세계일보' 문화부장, 한국기자협회 기획위원장, 동덕여대 강사, 월간 '신문과방송' '국회도서관보' 편집위원, 시사통일신문 대표 겸 편집국장, 열린포럼21 대표를 역임했다. 기자협회·서울시교육청 저널리스트 멘토로 4년째 활동 중이다.
농촌농민문학상(1986)·한국신문협회장상(1993)을 수상했고, 이번 책의 근간이 된 '골프채 업자에 놀아난 ‘민홍규 죽이기’ 게이트'(2013)와 '가산 이효석 선생의 혈육을 만나다'(2014)로 기자협회 ‘취재 이야기’, ‘기자의 세상보기’ 공모에 당선됐다. '한국언론공정보도투쟁사' '한국신문필화사'를 펴냈고, '왜 정부는 하는 일마다 실패하는가'를 번역했다.

목차
책 머리에
프롤로그 민홍규는 여론재판의 희생양이다 / 박찬종 변호사

제1장 국새사건의 진실
국새사건은 무엇인가
제작비를 횡령했는가
국새 로비는 있었나
국새 공모 심사에 로비가 있었나
전통기술이 없다고 자백했는가
황금퍼터사업의 진실
40억 다이아몬드 봉황옥새
국새백서는 왜 조작되었는가

제2장 국새는 누가 만들었나
민홍규는 전통기술이 있는가
금을 횡령하였는가
오합토와 거푸집은 제작하였는가
현대식 전기로는 왜 구입했는가
오합금은 무엇인가
인면 내부 봉 기둥의 진실게임
국새 바꿔치기가 가능한가
국새 주물 현장에 누가 있었는가
개물식 국새는 누가 만들었나
금의 함량이 다르다
인뉴는 누가 만들었나
왜 국새에 이름을 새겼을까

제3장 국새에 얽힌 비밀
1대 국새는 누가 만들었나
석불 정기호는 누구인가
민홍규는 석불의 제자인가
민홍규는 100억대 부자인가
서울시무형문화재 심사 숨은 진실
국새전각전 건립 횡령 의혹

제4장 풀어야 할 의혹들
주변 인물들은 왜 돌아섰는가
이 사건으로 누가 이익을 보는가
왜 전통기술의 시연을 막는가
어떤 증인과 증거물이 부정되었는가
진실을 외면하는 검찰 공소장
수사기관은 왜 진실을 외면하는가

에필로그 진실 그리고 새로운 시작 / 황종국 변호사
사진으로 보는 국새사건

책속으로
정치인 금도장 로비설과 관련된 내용은 2011년 5월 검찰이 모두 무혐의 처리했다. 국새제작단장 임명은 국새제작자문위원회의 석상에서 모든 위원들이 모인 가운데 “국새공모 당선작가 민홍규가 국새뿐 아니라 그동안 국새 의장품도 제작, 전시하였고 국새에 관계된 책도 집필하였으니 단장으로 임명하자”는 한 자문위원의 제안에 모두 좋다고 찬성하여 자연스럽게 된 것이다.
--- p. 37

경찰과 검찰은 왜 국새사건을 정·관계 및 언론계 로비사건으로 몰고 갔을까. 여기에는 정치적인 이유가 있다. 4대 국새는 참여정부에서 행해진 일이었고, 이명박 정부에서는 이전 정부를 뒤엎을 뭔가가 필요했다는 얘기다. 당시 정부는 4대강 사업 반대 기류와 민간인 사찰 문제가 정치적 쟁점으로 부각돼 코너에 몰려 있었다.
금 횡령, 정?관계 로비 등 모든 것이 여의치 않자 수사기관은 결국 민홍규를 전통기술이 없음에도 있다고 속이고 국새를 만든 사기꾼으로 몰아가게 된 것이다.
--- p. 38

인뉴는 2006년 11월 24일 정부서울청사 1916호실에서 심사하였고, 인문은 2006년 11월 27일 심사하여 결정했다. 작품 출품인의 이름을 가린 이른바 블라인드 테스트로 심사를 하였으며, 심사위원들에게는 당선작이 누구 것인지도 말해주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자문위원들에게는 심사 후 인뉴, 인문 당선작이 모두 민홍규의 작품이라는 것을 말한 후 자문을 구하였다는 것이다. 인뉴 조각과 인문 글씨에 대해 심사위원들이 공정하게 심사하여 민홍규의 작품이 모두 당선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 p. 45

경찰은 민홍규에게 2007년 12월 2일 주물작업을 하면서 금을 녹이는 도구로 가스토치를 사용하였느냐고 물었다. 12월 2일은 개물식 전날로 인면에 주물을 붓던 날이다. 그날 산청은 날씨가 춥고 바람도 거세 금 주물이 금세 식을 위험이 있었다. 가스토치는 주물을 하는 동안 녹인 금이 금방 굳을 수 있다는 이창수의 말에 산청의 문화해설사 민향식 씨가 친구에게서 빌려온 것이었다. 민홍규는 가스토치를 사용해본 적도 없고 다룰 줄도 몰랐지만 이창수가 자신이 전문이라며 도가니의 주둥이 부분을 달궈 금 주물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사용한 것이었다.
민홍규에게는 중요하지도 않고 생각지도 못한 가스토치에 대해 경찰이 묻고 있었던 것이다.
“가스토치를 사용했습니까, 안 했습니까?”
“아, 예. 물론 이창수가 들고 도가니 주둥이에 금이 식지 말라고 쓰긴 했습니다만….”
“가스토치는 전통식입니까, 현대식입니까?”
“아, 그거야 요즘 쓰는 물건이니 현대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만….”
민홍규는 얼떨결에 ‘가스토치는 현대적’이라고 답변했다.
“그럼, 현대식이 맞네.”
원하던 답변을 얻어낸 경찰은 곧장 기자실로 달려가 “민홍규가 현대식으로 했다고 시인했다”고 브리핑했다. 민홍규와 직접 접촉할 수 없었던 기자들은 경찰이 불러주는 대로 ‘민홍규 현대식 시인’이라고 보도했다.
--- pp. 48-49

민홍규가 다음 날 경찰조사에 임하러 서울지방경찰청에 들어설 때 간단한 언론 인터뷰를 하게 했다. 순진한 민홍규는 자신과 관련된 이런 일이 생긴 것 자체가 국민에게 송구스럽다는 의미로 “물의를 일으켜 국민께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SBS 기자는 앞에 민홍규가 전통기술이 없다는 멘트를 넣은 다음 민홍규의 이 말을 교묘히 편집하여 방송하였다. 당연히 민홍규가 “전통기술이 없는데 이런 일을 저질러서 죄송합니다”로 받아들이게끔 짜집기하여 보도한 것이다.
--- pp. 52-53

2009년 여름 박희웅이 전각전 공사장으로 민홍규를 찾아왔다. 박희웅은 식당 겸 사무실로 사용하던 컨테이너 박스 안에서 무릎을 꿇고 퍼터사업을 도와달라고 간청한다. 눈물까지 글썽였다. 박희웅은 “이 사업을 하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 같다”며 민홍규가 나서 줄 것을 간곡히 요청하였다. 이에 민홍규는 박희웅이 소개한 골프퍼트 제조업체인 ㈜뱅코스 대표 박준서를 만나게 된다.
--- p. 55

박준서와 이창수가 동업하는 황금퍼터사업 관련 문서에는 이창수의 이력이 조작되어 나온다. 민홍규의 이력을 그대로 도용해 이창수의 이력으로 둔갑시켰다.
이창수가 1998년, 1999년, 2000년, 2002년, 2005년 5회에 걸쳐 조선 옥새 복원작업을 하였고, 국새제작 실행위원이라고 되어 있다. 이창수는 옥새 복원을 한 적도 없으며 할 능력도 없다. 또한 '국새백서'나 행정자치부의 어떤 문서에도 국새제작 실행위원이란 직책은 없다.
--- pp. 58-59

박희웅은 왜 거짓말로 민홍규를 사지로 몰아넣는 것일까. 자신이 하자고 졸라 전시회를 열고, 자신이 다 알아서 판매할테니 걱정말고 있으라고 했던 그가 왜 그랬을까.
민홍규는 봉황옥새가 모조품이라는 사실을 처음부터 박희웅에게 알렸고, 롯데백화점 측에도 그 사실을 분명히 밝혔다고 주장한다. 또한 샘플로 홍보를 하고, 실제 주문이 들어오면 진품 다이아몬드로 제작해 주려고 했다고 한결같이 주장한다. 사기를 치려 하지도 않았고, 매수 희망자에게 거짓말도 하지 않아 범행이 착수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정민조는 누나가 자신 몰래 '고옥새간회정도'를 민홍규에게 전달했다는 사실을 언론보도를 통해 알고 무척 분개했다. 이 일로 누나와 사이가 틀어졌을 뿐만 아니라 민홍규에게도 나쁜 감정을 갖게 되었다. 아버지의 유품이라면 당연히 유일한 아들인 자신이 물려 받아야 하는데 누나가 민홍규에게 전해 준 사실에 단단히 화가 나 있었다. 그리고 민홍규도 설령 누나에게 받았다 하더라도 자신에게 가져와야지 몰래 가지고 있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 p. 76

국새제작단에서 이창수의 지위가 몇 번이나 조작되었다는 점이다. 행정자치부는 2007년 국새 및 국새 의장품을 확정하고 국새제작단이 발족하면서 공식 명단을 발표한다. 이는 2008년 행정안전부에서 발간한 소책자 '국새'에서 확인할 수 있다. 여기에 이창수는 민홍규 산하 ‘세불옥새연구소 전수공’으로서 담당 분야가 ‘보조’로 기재되어 있다. 그런데 2009년 11월 24일 민홍규에게 보낸 '국새백서' 초고 메일에는 이창수를 ‘귀금속 가공 기능장’으로 변조해 놓았다.
민홍규가 이에 대한 이의를 제기하였지만 완성된 백서에는 이창수를 ‘국새 제작’ 분야의 ‘금장’으로 변조해 놓았고 본문에는 ‘전통금속공예가’에 ‘금장’으로 둔갑해 놓았다.
--- p. 86

수사기관의 조사내용을 보면 민홍규는 이창수를 2003년경 처음 만났고, 연성흠을 만난 지도 10년이 채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민홍규가 주물기술이 없다는 것을 밝히기 위해서는 다음 두 가지 의문점이 해소되어야 한다.
첫째, 연성흠과 이창수를 만나기 전에 민홍규가 만든 옥새 복원품 등은 누가 만들어 주었을까. 둘째, 민홍규가 도장을 만들 때 주물은 누가 해주었을까 하는 점이다.
--- p. 101

최종 확정된 국새 제작 예산은 1억 9,000만 원이다. 이 금액은 국새 제작에 소요되는 전체 비용이었다. 금 국새 1점, 동국새 1점, 16종의 국새 의장품을 만드는 재료비, 국새제작단 인건비, 진행비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
국새 제작의 핵심은 바로 국새이며 그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이 주재료인 금 구입비였다. 국새 총제작비 1억 9,000만 원 중에서 금 구입에 책정된 예산은 총 8,960만 원이다.
--- p. 105

민홍규는 왜 현대식 전기로를 구입했을까. 그는 국새를 만드는 동안 몇 번의 주물실험을 하게 된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완벽한 국새 주물을 위해 실험이 필요했고, 주물보조인 이창수로 하여금 현대식 주물방식으로 실험하도록 하여 그 데이터를 전통방식에 참고하려고 했다.
전통방식으로 실험을 하지 않은 이유는 진흙거푸집을 만드는 시간이 오래 걸릴 뿐더러 많은 양의 금이 손실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민홍규는 반지 등 다른 금세공과 달리 국새 제작을 위한 전통주물에 쓰일 합금 비율과 용융점, 강도 등 몇 가지 중요한 데이터를 알아야 했다. 그래서 실험이 필요했다.
--- p. 124

이창수의 처음 주장은 개물식 전날 산청에서의 주물 작업은 아예 없었다고 하였다. 자신은 개물식 날 아침에 산청에 내려가 행사에만 참석하였고 민홍규는 주물기술이 없기 때문에 주물작업을 할 수 없다고 한 것이다. 그러다 민홍규와 이창수가 함께 주물하는 사진이 나오자 이창수는 민홍규가 바꿔치기 하였다고 공격하기 시작했다. 개물식에 사용된 국새는 이창수의 주장대로 2007년 12월 3일 새벽에 바꿔치기 된 것인가. 민홍규는 언제 국새를 바꿔치기 할 수 있었을까.
--- p. 148

무엇보다 국새 전각이나 전각가들에게는 자기 작품에 서명하는 것은 통례이며 법칙이다. 서예 전각가 정도일 선생은 “국새도 전각인데 전각 작품에 작가 이름을 넣는 것을 가지고 문제 삼는 것은 문제 삼는 이들이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작가들은 작품 어딘가에 반드시 자신의 서명을 새겨 넣는다. 민홍규가 국새에 자기 이름을 서명으로 새겼다는 뉴스를 들은 조각가 이긍범은 “당연한 것 아니냐”며 전혀 놀라지 않았다.
--- p. 195

민홍규가 15세가 되던 1969년 겨울방학에 민영보는 종손 민홍규를 데리고 부산에 사는 석불 선생을 찾아간다. 석불의 작업 서재인 고죽산방에 들어서니 만주에서 오세창 선생이 석불 선생의 동장을 보고 칭찬한 글과 나무판에 전각을 새긴 현판 작품이 걸려 있었다.
첫 대면에서 석불 선생은 민홍규의 입문에 흔쾌히 답하기보다 친아들이 이에 전념하지 않음을 안타까워했다. 그 후 민홍규는 틈틈이 전각의 역사를 공부했다.
--- p. 225

옥새를 복원했다는 1998년은 1966년생인 이창수가 불과 32세가 되는 해이다. 이창수는 전남 여수에서 어린 나이에 상경해 귀금속 공방에서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재판 과정과 수사기관의 조사에서 금도장에 새겨진 한자를 읽지 못한다고 진술했다. 이창수의 이력을 조작하더라도 앞뒤가 어느 정도 맞아떨어져야 하지 않은가. 이창수의 옥새 복원 주장은 명백한 거짓말이다. 이창수 이력으로 조작한 기록은 민홍규가 옥새를 복원하여 경기도박물관과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전시한 내용이다.
현재도 이창수는 자신이 황금퍼터를 제작했다고 주장하며 각종 골프용품 전시회나 백화점 판매행사에 참여하고 있다. 특히 2013년 연말에는 모 방송사 다큐멘터리에 출연하여 조선 옥새를 복원한 장인이 자기라며 스스로를 소개했다고 한다. 기가 막힌 일이다.
--- pp. 259-260

목불은 언론보도를 통해 조선시대 옥새 계보도와 1대 국새가 날인되고 제작 과정이 담긴 아버지 정기호의 유고집 '고옥새간회정도'를 아들인 자신이 아닌 민홍규가 갖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매우 불쾌하게 생각했다. 목불은 이 책의 가치가 상당한 것으로 생각했고, 민홍규가 아버지 몰래 훔쳐간 것이라고 의심을 품게 된다. 그런데 자신의 누나가 석불 사후에 유품을 정리하며 발견해 제자인 민홍규에게 준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목불은 누나에게 불같이 화를 내었고, 민홍규에게도 자신에게 가져오지 않았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목불은 민홍규가 아버지의 제자가 아니라는 결론이 나면, 자신이 석불의 유일한 제자가 되어 민홍규 대신 부와 명성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출판사 리뷰
민홍규는 여론 재판의 희생양이다”

2010년 8월 말 터진 국새사기사건은 글로벌 금융위기로 가뜩이나 짜증나 있던 국민을 화나게 했다. 국새사건은 대한민국 4대 국새의 제작단장을 맡았던 민홍규가 국새를 만들고 남은 금을 빼돌려 금도장을 만들어 정·관계 인사들에게 로비용으로 돌렸다는 언론보도로 시작됐다.
여기에 600년 비전(秘傳)이라는 전통기술이 없으면서 전통기법으로 국새를 만들었다고 거짓말을 했고, 국새에 버젓이 자기의 이름을 새겨 넣었다는 데에 이르러 여론은 절제력을 잃었다. 수사가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여론재판은 끝났다. 민홍규는 파렴치한 사기꾼이고 국가를 농락한 국사범이 되어 있었다. 민홍규 관련 기사와 수사는 국새제작단의 주물보조를 지낸 제보자 이창수의 진술에만 의존한 채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민홍규에게 제기된 의혹은 마치 모든 게 사실인양 보도됐다. 언론들은 최소한의 확인과정도 거치지 않고 연일 대서특필했다. 민홍규의 입장이나 진술은 단 하나도 반영이 되지 않았다. 수사는 제보자의 진술을 언론이 먼저 보도하고, 수사기관이 그 뒤를 따라 확인하는 수순으로 진행되었다. 전형적인 여론재판이자 마녀사냥이었다. 지극히 비정상적인 처리였다. 냉정한 이성과 법리가 지배해야 하는 법정은 요식 절차로 전락했다.
수사 결과, 민홍규의 금 횡령과 금도장 로비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기소조차 안되었거나 재판 과정에서 모두 무혐의 처리됐다. 국새사건을 맡았던 한 검사는 판결 후 민홍규에게 “우리가 한 게 아니다. 언론이 떠들고 해서 한 것이다. 개인적 감정은 없다”고 했다. 검찰 스스로 여론에 끌려 다녔음을 인정한 것이다.
하지만 민홍규는 자신이 전통기술이 있음을 시연하여 보이겠다고 하였지만 이를 묵살당한 채 ‘전통기술 없이 국새를 제작한 사기’라는 죄로 3년형을 선고 받았다. 재판부는 왜 민홍규의 전통기술 시연을 막는가.

“이창수는 왜 거짓증언을 일삼는가”

국새사건의 불을 지핀 사람은 민홍규가 국새제작단에 주물보조로 고용한 이창수(종로에서 반지 등을 주물해주던 일을 함)였다. 이창수는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내가 현대식으로 만든 국새를 민홍규가 바꿔치기해서 국가에 납품하였다”고 주장했다. 이를 시작으로 행정안전부가 서울지방경찰청에 수사를 의뢰하며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이창수는 국새제작단에서 15일 일하고 급여로 126만 원을 받은 말 그대로 보조였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존재였다. 4대 국새 공모전에 조각과 글씨 부문에서 각각 1등으로 당선된 작가는 민홍규이고, 국새제작단장과 총괄책임자도 민홍규였다. 주물보조에 불과한 국새제작단의 일개 단원이 국새를 만들었다는 게 말이 되는가. 그러나 언론은 그렇게 보도했고, 경찰과 검찰은 그렇게 수사해 기소했고, 재판부는 그렇게 판결했다. 취재도 엉터리, 수사도 엉터리, 판결도 엉터리였다.
제보자 이창수는 방송 인터뷰, 수사기관에서의 진술뿐만 아니라 재판정에 증인으로 출석해서도 지속적으로 진술을 번복하였다.
이창수의 거짓 증언의 압권은 2007년 12월 1일과 2일 국새 제작 장소인 경남 산청에 가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이창수가 그날 현장에 있었느냐 없었느냐는 국새사건의 진위를 판가름하는 핵심이었다. 왜냐하면 그날 이창수는 민홍규가 국새를 만들 때 옆에서 주물을 도왔고 그것이 확인되면 민홍규가 국새를 만든 것이 사실이 되기 때문이었다.
이창수는 처음 12월 3일 아침에 산청에 왔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그는 주물하는 과정을 본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12월 2일 이창수가 현장에 있는 사진을 증거자료로 제출하자 12월 2일 밤늦게 도착해 3일 개물식 행사에만 참석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12월 1일에도 이창수가 현장에 있었다는 사진을 제출하자 급기야 사진의 날짜를 조작했다고 주장한다. 국립과학수사원에 사진조작여부를 의뢰한 결과 ‘조작의 흔적이 없다’고 나왔다.
하지만 검찰은 국과수의 감정결과가 “재판에 도움이 안 된다”며 무시한 채 민홍규를 구속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사법부인가.

“국새사건의 발단은 황금퍼트사업이다”

민홍규가 국새를 만든 후 그 밑에서 일하던 행정 담당 박희웅은 골프퍼트 제작업자 박준서와 함께 황금퍼트 사업을 하기로 한다. 그들은 ‘국새장인이 만든 퍼트’라는 이력이 필요해 민홍규를 동업자로 끌어들이려 했으나 이를 거부하자 민홍규 대신 이창수를 내세우기로 한다. 이창수에게 민홍규에 버금가는 스펙을 만들어주어야 했기에 먼저 '국새백서'의 이창수 자격을 조작하였다. 여기에 '국새백서' 제작을 담당했던 국립민속박물관 관계자와 행정자치부 일부 공무원 등도 연루되어 있다. 또 황금퍼트를 홍보하기 위해 이창수는 조선조 옥새 복원 등 민홍규의 이력을 자신의 것인양 도용했다.
민홍규는 '국새백서'의 조직도가 사실과는 다르게 인쇄되어 나오자 이의를 제기했고, 이를 껄끄럽게 여긴 관련자들이 ‘민홍규 죽이기’에 나선 것이다. 이들은 재판과정에서 민홍규를 고발하기 위해 1년을 준비했다고 진술하였다.
민홍규를 제거한 이유가 국새를 만든 장인이 따로 있다고 하여 그 스펙을 이용해 황금퍼트사업을 홍보하고 판매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속셈이 드러난 것이다.

“40억 다이아몬드 옥새 진품은 따로 있다”

롯데백화점 다이아몬드옥새 전시회도 진실을 알고 나면 허탈한 웃음만 나온다. 다이아몬드옥새 전시회는 두 차례 이루어졌다. 첫 번째는 2006년 재료비만 30억 원어치가 들어간 진짜 다이아몬드 봉황옥새 전시회였고, 두 번째는 2009년의 인조 다이아몬드 옥새 전시회였다. 2006년 전시품은 맞춤 주문한 재일교포 사업가 S씨의 이름이 새겨진 진품인 반면, 2009년 전시품은 민홍규가 훗날 자신의 박물관에 전시하기 위해 만든 이미테이션 작품이다. 밑면에는 ‘세불문화재단’이라 새겨져 있다.
이것도 행정보조 박희웅의 농간으로 빚어진 억울한 사건이다. 박희웅이 롯데백화점 전시회를 하고자 하니 인조다이아몬드를 내어달라고 한다. 민홍규는 진품이 아니라 안된다고 하였지만 박희웅이 자신이 다 알아서 하고 나중에 주문이 들어오면 만들어주면 된다고 하여 전시하도록 내어주었다. 모든 일처리를 박희웅이 했고 민홍규는 전시회 중에 잠깐 들렀다. 그런데 나중에 박희웅은 민홍규가 인조라고 하였다는 사실도 모른다고 거짓진술로 일관하며 민홍규에게 뒤집어 씌웠다. 롯데 담당자들이 민홍규의 입장을 진술해주었지만 재판부는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다.
박희웅의 요구로 전시회를 가졌고, 어쨌든 민홍규는 주문이 들어오면 고객의 요구에 맞춰 제작해주려 했던 것을 수사기관은 200만 원짜리를 40억 원에 팔려고 했다며 사기로 단정했다.

“왜 전통기술의 시연을 막는가”

경찰과 검찰은 금 횡령과 금도장 로비가 무죄로 밝혀지자 민홍규를 ‘전통기술 부재’로 몰아갔다. 민홍규를 기필코 구속하지 않으면 안 되는 모종의 미션을 수행하는 듯했다. 민홍규는 수사 초기부터 줄곧 ‘공개 시연’을 주장했다. 시연만 하면 금세 진실이 판가름 날 간단한 일을 검찰과 재판부는 기를 쓰며 전통기술이 없다는 것으로 몰고 갔다. 민홍규가 전통기술이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 민홍규 죽이기에 가담했던 많은 사람들이 곤란()해지는 상황에 빠지게 될 것이다. 민홍규가 죽어야 사는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은 아닐까. 뭔가 거대한 권력이 뒤에서 조종하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는 불가사의한 일이다.
민홍규는 수감 중 “내가 갖고 있는 기술이 어디 가겠느냐”며 출소 후 공개 시연을 하겠다고 담담하게 3년 형기를 다 채우고 2013년 9월 출소했다.
민홍규의 국새 제작 전통기법은 거푸집에 비밀이 숨겨져 있다. 석고로 하는 현대기법과 달리 전통기법의 재료는 진흙이다. 석고거푸집은 섭씨 1,000도 이상 가열(소성)하면 깨지지만, 진흙거푸집은 2,000도 이상 가열해도 깨지지 않는다. 전통 항아리처럼 숨을 쉬는 진흙의 고유한 성질 때문이다. 이창수가 비법인 양 주장하는 주물은 액체를 거푸집에 붓는 단순한 행위에 불과하다. 비법과는 거리가 멀다.
제보자들이 집요하게 알아내고 싶었던 것은 민홍규가 가진 ‘비법’이었다. 하지만 민홍규는 목숨보다 소중한 비법을 알려줄 수 없었다. 차라리 교도소를 가더라도 비법은 공개할 수 없었다고 한다. 민홍규는 “백악관이 코카콜라를 주문하면 코카콜라만 납품하면 되지, 코카콜라를 제작하는 비법까지 알려줄 의무가 있느냐”고 반문한다. 국가가 한 장인에게 국새 하나를 주문하고 그 비법까지 공개하라고 하면 그것은 공권력의 횡포다.

“민홍규는 석불의 제자다”

민홍규는 조선시대 옥새전각장의 맥을 잇는 대한민국 1대 국새 제작자 석불(石佛) 정기호 선생으로부터 국새 전통주물기법을 전수받았다. 수십 년 동안 부단한 실험을 통해 전통주물기술을 복원하여 완성했다. 조선시대 옥새 73과 중 40여 과를 복원해 경기도박물관과 국립중앙박물관 등에 기증했다. 전에도 후에도 이런 일을 한 사람은 민홍규밖에 없다.
석불의 아들 목불(木佛) 정민조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민홍규를 잘 모른다. 아버지의 제자가 아니다”고 한 말은 거짓이다. 석불 정기호가 만든 1대 국새에 관한 기록뿐만 아니라 조선시대의 옥새전각장 계보도까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는 아버지 석불 유고집 '고옥새간회정도(古玉璽看繪鄭圖)'을 자신이 아닌 제자 민홍규가 가지고 있는 것이 억울하고 화가 났다고 한다. 이 또한 누군가의 목불과 민홍규를 이간질 하였다는 것이 목불을 만나본 결과다.

“국새가 정치적으로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

국새사건은 정치적 성격도 있다. 이명박 정부가 민간인 사찰과 4대강 문제로 수세에 몰린 정세를 반전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조작했다는 의혹이다. 재판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행정안전부는 4대 국새를 폐기하고 5대 국새를 새로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참여정부 때 만든 국새를 의도적으로 폐기처분하려 한 저의가 읽혀진다. 국새가 제작되던 시기인 2007년 당시 정치적 실세였던 한명숙 총리와 정동영 장관, 이미경 의원을 겨냥한 표적수사에 공을 들인 흔적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금도장 로비설의 실체가 여기에 있다. 민홍규가 4대 국새를 만들 당시 이들에게 금도장으로 로비하여 국새제작단장이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금도장 로비설로 인해 민홍규는 국민들의 공분을 사고 사기꾼으로 전락하게 만들었지만 막상 아무리 엮으려 해도 실체가 없었고 무혐의 처리가 되었다.
재판이 한창 진행 중이던 2011년 4월 27일 국회의원 재보선 때는 분당에 출마한 손학규 민주당 대표를 표적으로 삼기도 했다. 검사는 민홍규에게 “손학규한테 금도장을 바쳤다고 하면 수사자료를 모두 소각하고 없던 일로 해주겠다”고 회유했다. 사실이 아니기 때문에 일언지하에 거절했지만, 당시 정부가 민홍규를 어떻게 활용하려 했는지 명백히 드러난 사례다. 앞서 한 검사는 민홍규한테 “나라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소옥새를 제작했다고 말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충고한 일도 있다.
이에 대해 민홍규는 “내가 만든 4대 국새가 단지 노무현 정부 때의 것이지 나는 정치인이 아니다. 나는 한 사람의 예술가일 뿐이다. 나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길 바란다”며 자신을 한 사람의 예술가로 남고 싶을 뿐이다고 덧붙였다.
국새는 민홍규가 만들었고 한 나라의 장인이 만든, 나라를 위한 순수한 마음이 담긴 대한민국의 상징물이다. 과거 왕조시대 땐 절대 권력의 상징이었다. 국새는 한 나라의 도장 이상의 의미가 있고, 나라의 흥망성쇠를 따지는 귀한 물건임에 틀림없다. 이러한 국새를 가지고 장난친 국새사건의 연루자들은 반드시 재조사를 통해 진실을 밝혀 엄벌해야 한다.
이 책은 일련의 사건을 통해 인간의 끝없는 탐욕과 행정부와 사법부의 엉터리 수사의 문제점, 허위의식 등을 고발하고자 한다. 그리하여 정부기록원 수장고에 잠들어 있는 4대 국새의 권위를 회복하고, 대한민국의 실추된 명예를 되찾아주고자 한다.

행복한 고통: 한국 최초 미대륙 횡단 자전거 레이스 도전기
김기중 저 | 글로세움

 

 

 

책소개
자전거 레이스로 인간의 한계에 도전한 사나이
뚱보, 희귀 난치성 질환을 극복하고 ‘나를 찾는다’

젊은 날 우리 모두는 꿈으로 인생을 설계한다. 그러나 막상 사회에 나가 일에 부딪히고 가장이 되면 맘처럼 되지 않는 것이 대부분이다. 자신이 운영하던 사업과 일상생활은 물론 건강까지 잃게 되면서 앞이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혀 세상과 맞설 용기를 잃어버린 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어린 시절 100킬로그램이 넘는 뚱보이기도 했고, 급격하게 그 살을 빼려다 희귀 난치성 질환 환자가 되어 삶을 포기하려고 한 적도 있다. 무기력하게 살아가던 그가 어느 날 자전거를 만나면서부터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되었다.


저자 소개
저자 : 김기중
YTN [공감 인터뷰] MBC [이야기쇼 울림] KBS2 [세계는 지금]에 출연.
울트라 마라톤 사이클리스트. 왕발. 모두 그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는 100킬로그램이 넘는 고도비만으로 인해 마음의 벽을 두고 살다가 무리한 다이어트로 희귀 난치성 질환인 베체트병을 얻었다. 이십대에는 병마와 싸우며 무기력한 삶을 살았다. 삼십대에 우연히 자전거를 타기 시작하면서 소심한 아저씨의 모습을 벗어던지고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맞는다.
2011년에는 극한의 스포츠 ‘램 RAAM 미대륙 횡단 자전거 레이스’ 2인팀 부문에 이형모 씨와 함께 출전해 한국인 최초로 우승을 거머쥐었다. 같은 해 ‘호주 크로커다일 트로피’도 한국인 최초, 아시아 두 번째로 완주하였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2013년에는 램 솔로 부문에 한국인 최초로 참가하였다. 무릎을 수술하고 뼈가 부러지는 사고를 겪으면서도 결코 도전을 멈출 수 없는 이유는 ‘나눔’을 실천하기 위해서다. 그는 극한의 도전을 할 때마다 기부 캠페인을 펼치며 함께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목차
프롤로그
고통 속에서도 행복은 숨 쉰다

1장 서른여섯, 다시 살다
뚱보로 열등감에 빠져 살다 / 희귀 난치성 질환 환자가 되다
무의미한 삶을 살다 / 자전거에 꽂히다 / 철인 3종 경기를 완주하다

2장 내가 꾸는 꿈
인생이 바뀌는 자전거 대회 / 무모하게 도전장을 내밀다 / 좋은 뜻이 선물이 되다
내 삶의 주인공은 나이다 / 자전거가 산산조각이 나다 / 살아 있다는 것이 행복하다
크로커다일 트로피 아시아 최초로 완주하다 / 이것이 진정한 사이클링이다

3장 쓰러지고 다시 일어나고
마음속 울림을 듣다 / 예기치 않은 복병을 만나다 /
흔들리고, 흔들리고 수만 번 흔들리고 / 발버둥도 노력이다 / 애벌레, 고치 밖으로 나오다


4장 나는 내 생각보다 강하다
극한의 레이스에 도전하다 / 나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다 / 52도 사막 지옥을 맛보다
더위와 오르막길 균형을 잃다 / 채찍도 지극한 사랑이다 / 힘들어도 포기하면 안 되잖아
여기가 바로 네 눈물을 참게 한 곳 / 빛의 터널을 달려 로키산맥에 오르다
토네이도 속에서 싹트는 우정 / 절망을 희망으로 / 누군가 나를 위해 기도하다

5장 함께 앞으로
환각의 공포 완주를 막다 / 승리만이 목적이 아니다 / 진정한 끝은 희망을 버렸을 때다
팀 구호를 마음에 새기다 / 쓰러지고 또다시 일어나고 / 소중한 것은 맨 마지막에 남는다
가장 나다운 레이스를 펼치다 / 내 마음 속 결승선을 넘다

6장 또 다른 시작
램을 통해 새로운 나를 만나다 / 길 위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들
마음으로 함께 달린 소중한 사람들 / 크루가 없으면 선수도 없다
코리아는 어디서든 살아 있다 / 형모의 아름다운 도전, 2014년 램 솔로 참가

에필로그
추천사 고통을 행복으로 바꾼 사나이·이동순

책속으로
완주를 하면 얼마나 행복할까 상상했는데 막상 완주를 하고나니 행복은 결과가 아닌 도착까지의 과정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매일 땀흘려 준비한 시간과 레이스 동안 힘들고 아팠던 기억 모두가 행복이었다. 꿈이 있으면 그때의 고통은 행복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81쪽)

나는 이번 램을 통해 후원 단체인 ‘꿈을이루는사람들’과 ‘자비원’을 위한 기금을 모으고 있다. 이 두 날개가 나를 결승점까지 데려다 주리라 믿는다. (141쪽)

도대체 인간의 육체적 한계란 무엇일까. 거의 매일 부딪히는 육체적 한계점에서 그 한계란 일시적일 뿐이었다. 한계에 달해도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니 너무 좌절할 필요가 없었다. 다시 일어날 줄 알기에 끝까지 나를 태울 수도 있었다. 한계라고 느낄 때는 다시 컨디션을 찾기 위해 집중하고, 다시 컨디션이 회복되면 그 컨디션을 최대한 오래 유지하면 되었다. (231쪽)

모든 것이 엉망이었다. 비록 우리의 결과는 초라하지만 끝까지 소중한 것을 잃지 않았다. 소중한 것은 바로 사람이었다. 한계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또 자신을 보았다. 우리는 서로 도와주고 있고 서로에게 의미가 되어주고 있었다. 우리는 지금 함께 있기에, 단지 그 자체
만으로도 행복했다. (236쪽)

출판사 리뷰
자전거 레이스로 인간의 한계에 도전한 사나이
뚱보, 희귀 난치성 질환을 극복하고 ‘나를 찾는다’

“와~정말, 하고 읽다보면 어느새 가슴이 뜨거워진다”

젊은 날 우리 모두는 꿈으로 인생을 설계한다. 그러나 막상 사회에 나가 일에 부딪히고 가장이 되면 맘처럼 되지 않는 것이 대부분이다. 자신이 운영하던 사업과 일상생활은 물론 건강까지 잃게 되면서 앞이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혀 세상과 맞설 용기를 잃어버린 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어린 시절 100킬로그램이 넘는 뚱보이기도 했고, 급격하게 그 살을 빼려다 희귀 난치성 질환 환자가 되어 삶을 포기하려고 한 적도 있다. 무기력하게 살아가던 그가 어느 날 자전거를 만나면서부터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되었다.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스스로에게 묻고 싶었고, 스스로 해낼 수 있는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알고 싶었다. 그래서 그가 선택한 도전은 극한의 스포츠 중 고통 지수 1위로 뽑히는 악명 높은 자전거 레이스 ‘램(RAAM, 미대륙 횡단 레이스)’에 완주하는 것이었다.
램은 하루 평균 1~2시간만 자면서 12일 동안 자전거만으로 로키산맥, 미시시피강, 아리조나사막, 캔자스대평원 등 미대륙을 가로질러 총 4,810킬로미터를 달려야 한다. 지구 둘레의 1/8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거리다. 그는 졸음과 환각 등 극한의 고통 속에서 내면의 울림을 듣게 되고, 자신이 살아온 과거를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앞으로 어떠한 삶을 살고 싶은지, 인간관계를 어떻게 구축해야 하는지, 진정한 나눔과 사랑은 무엇인지 등 나름의 해답을 구하게 된다.
지금 그는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지구상에서 가장 힘들다는 극한의 자전거 레이스인 ‘램’과 ‘호주 크로커다일 트로피’를 완주한 사람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다. 이렇게 되기까지 상상조차 하기 힘든 엄청난 고통을 견뎠고, 피와 땀과 눈물이 범벅이 된 훈련과 재활의 시간을 보냈다. 힘들다는 말로는 부족한 그 시간 속에서 ‘나는 누구이고, 행복은 무엇인지, 무참한 현실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사람은 왜 서로를 보듬어야 하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이 책은 자전거를 통한 한 남자의 성장 일기이며, 동시에 램 완주라는 불가능한 꿈을 실현하려는 도전과 좌절의 기록이다. 저자는 자신의 도전기가 누군가에게 ‘꿈꾸라’, ‘한번 달려보라’는 작지만 분명한 속삭임이 된다면 좋겠다고 말한다.

“우리네 인생이 가끔은 어둡고 긴 터널 속에서 혼자 걷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손가락 하나 부서져도 좋다는 각오로 벽을 향해 주먹 한 번 내질러보자. 그토록 높고 단단해 보이던 벽이 마음의 벽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_본문 중에서

고통 속에서 삶의 가치를 알게 되다
세상을 향한 따뜻하고 특별한 메시지, 기부 라이딩!

“나는 자전거를 통해 행복한 고통을 알게 되고 다시 꿈을 꾸게 되었다”

그의 어린 시절은 100kg이 넘는 고도비만과 성적 꼴찌라는 꼬리표를 달고 암울한 성장기를 보냈다. 이런 꼬리표를 지우고 멋진 대학 생활을 꿈꾸며 무리한 다이어트를 시작했고, 이로 인해 희귀 난치성 질환인 베체트병을 얻었다. 결국 그는 병과 마주 선 채 이십대를 보냈고, 뚱뚱하고 소심한 삼십대 중반의 아저씨가 되었다. 결혼도 하고 조그만 회사도 경영하게 되었다. 그러나 자신이 꿈꿔 온 회사 경영과 사회생활은 현실이라는 답답한 벽에 가로막혀 괴리감이 생겼고 점점 더 마음 붙이기 어려웠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자전거를 만나게 되었고 자전거는 그의 삶을 송두리째 변화시켰다. 자전거는 그에게 인간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강인함과 꿈을 찾아가는 열정, 그리고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가치를 가르쳐 주었다.
그야말로 기적이었다. 더 이상 그에게서 베체트병의 후유증과 현실의 굴레에 지친 무기력한 삶은 찾아볼 수 없다. 삶에 대한 의지와 세상에 대한 뜨거운 애정으로 가득 찬 행복한 삶의 주인공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그는 자전거를 통해 자신을 알게 되면서 주변을 돌아보는 마음이 더 깊어졌다. 나눔에 대한 행복을 알게 되었고 이를 평생 자신이 실천해야 할 기쁨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평소 진오 스님과 함께 ‘꿈을이루는사람들’을 도우며 봉사하고 있기에 기부 라이딩에 도전해 보기로 결심했다. 처음 나눔 레이스를 시작할 때만 해도 반신반의했다. 그리 유명하지 않은 아마추어 레이서였고, 이기주의가 팽배한 사회에 대해 회의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결과는 놀라웠다.
그의 작은 마음과 움직임은 큰 변화를 이끌어냈다. 그 또한 고도비만과 베체트병이라는 어둡고 긴 터널 같은 시간을 견뎌왔기에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단순한 자전거 타기가 아닌 꿈과 희망을 전하는 라이딩을 하게 된 것이다. 기부 라이딩을 하면서 때로는 극한의 고통이 행복임을 알게 되었다.
그는 나눔을 통해 상상도 못한 선물을 받았다. 든든한 남편, 친구 같은 아빠, 소통하는 사장 등 비로소 자신이 꿈꿨던 사람을 향해 달려가는 길을 찾게 된 것이다. 그는 자전거 레이스에 도전할 때마다 나눔 캠페인을 펼친다. 여기서 모여진 기부금은 강릉 ‘자비원’과 소외된 이주 노동자를 위한 ‘꿈을이루는사람들’을 비롯한 다양한 복지 단체를 위해 쓰인다. 이 책의 인세 전액도 이들을 위한 나눔의 실천에 쓰인다.
당신은 지금 삶의 변화를 원하는가!

스포츠를 통한 인간의 한계 극복은 많은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준다. 하지만 이처럼 극한의 스포츠를 실천하는 이들은 드물다. 수많은 시련과 고통을 참아내며 가족과 친구들의 우려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자전거에 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수많은 자전거 대회와 철인 3종 경기에 참여하면서 크고 작은 사고와 함께 무릎 수술과 손등 뼈가 11조각이 나는 큰 시련을 겪었다. 덕분에 한동안 그는 나쁜 아빠, 나쁜 남편, 나쁜 아들임을 자처했다. 너무나 미안하고 힘들었지만 자전거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러다가 그는 어느 순간 가족이 자신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면서 더욱 자신감 있게 도전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이 책에서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출전한 램 도전자들을 만날 수 있다. 한쪽 팔다리가 없는 장애인팀과 척추측만증 환자도 있다. 또한 아픈 아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기 위해 출전한 여성도 있었다. 그들 역시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페달을 밟는다.
그들의 열정과 투혼을 보면서 저자 자신도 힘을 얻었고 포기하지 않고 고통을 견뎠다. 그들 역시 소외된 이웃과 아픈 사람들을 돕기 위해 처절하게 자신들의 한계를 뛰어넘고 있었던 것이다. 이들 선수들이 펼치는 불굴의 레이스를 보고 있노라면 진한 감동이 몰려온다.

인생 또한 자전거 타기와 같아서 균형을 유지하려면 끊임없이 움직여야 한다.

매일 같이 반복되는 일상에 지칠 때마다 더 나은 삶을 꿈꾸며 달콤한 상상에 빠진다. 그러나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이내 현실에 안주하기 마련이다. 이 책 역시 변화되고 싶은 당신에게 주저앉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작은 변화가 모여 거대한 세상이 변화한다는 진리를 일깨워주고 있다. 저자의 이야기는 불온한 시대를 살며 현실을 핑계로 꿈을 포기하거나, 왜 살아가는지 모른 채 하루하루를 소비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또한 쳇바퀴 돌듯 어제와 똑같은 오늘을 살고 있는 삼십대와 사십대에게도 성찰의 시간이 될 것이다. 저자 또한 타성에 젖어 그저 그렇게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그의 반전 레이스는 더 큰 힘과 용기를 불어넣는다.
총 6장으로 이루어진 이야기 속에는 그가 어떤 길을 달리며 무슨 생각을 했는지 생생하게 전달된다. 고통과 눈물의 레이스, 진정한 나눔, 희망과 사랑, 그리고 꿈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처음부터 길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앞으로 향해 나아가면 곧 길이 된다. 인생의 행복과 꿈은 그리 멀지 않은 곳이 있다. 한계를 정하지 않는 한 불가능은 없다. 할 수 있다고 믿어라. 이내 오래된 자전거 안장의 먼지를 털고 달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당장은 참기 힘든 고통이지만 그 순간을 참고 견디면 더 큰 행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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