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의 법의학자, 검시제도를 논하다
죽은 자의 권리를 말하다
문국진 지음. 장르|사회과학
발행일| 2012년 8월 15일, 값|14,800원
ISBN | 978–89–97222–14-8 03300
한국 최초의 법의학자로서 불모지 한국법의학을 개척해온 문국진 교수!
한국 검시제도와 법의학의 발전방향을 논하다!
지난해 우리나라 최초의 법의학 드라마인 <싸인>이 인기를 끌었다. 죽은 사람은 말이 없지만, 법의학자들은 사체 스스로 죽음에 대해 중요한 메시지(단서)를 보낸다며, 그 진실을 밝히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이 드라마는 인기리에 끝이 났고, 당시 잠깐이나마 법의관이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에 관심을 가지고 이를 직업으로 삼겠다고 지원한 사람이 늘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은 일시적 현상이고 현재 국내 법의학자의 수는 턱없이 부족하다.
우리나라는 경제적으로는 소득 2만불 시대를 열었지만 사후 인권을 다루는 검시제도에 있어서는 후진국 수준이다. 예전에는 살기 어려워 저지르는 생계형 범죄가 기승했다면, 경제가 발전하면서 갈수록 지능형 범죄가 대부분이다. 묻지마 연쇄살인, 성범죄, 보험을 노리는 각종 범죄 등이 사회를 혼탁하게 하고 있다. 억울하게 죽어가는 사람들이 많은 요즘‘사후권리’를 보호하는 법의학의 역할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우리나라 검시제도는 경찰관, 의사, 검사, 판사로 시행책임이 네 갈래로 분산되어 있다. 그러다보니 각기 자신에게 해당되는 책임에만 집착하고, 검시 본연의 임무나 목적은 뒷전으로 밀리는 경향이 있다. 여러 직종이 참여하다 보니 이들 상호간 유기적인 관계가 원활하지 못해 신속하고 정확한 사인구명에 허점이 드러나기도 한다.
미국 등 전담검시제도를 실시하는 나라의 경우 처음 사건의 현장에 검시관이나 법의관이 먼저 가 죽음의 원인에 대해 세밀히 조사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경찰이 먼저 현장에 가서 현장주변의 것들을 조사하고, 자연사인지 변사인지를 결정한다. 변사라고 보고하는 경우에만 검시절차를 거치기 때문에 개인의 판단에 따라 많은 억울한 죽음이 묻혀버릴 소지가 많다. 그리고 부검을 거치더라도 법의학자가 처음 사건 현장을 보지 못함으로써 사인(死因)과 관련된 중요한 정보를 놓치기 쉽다. 이러한 상태로는 억울한 죽음이 은폐될 가능성이 높고 이것이 우리나라 검시제도가 안고 있는 문제점 중의 하나다.
이 책은‘법의학 불모지’인 우리나라에서 평생을 법의학자로 살아온 문국진 고려대 명예교수가 자신이 현장에서 겪어온 수많은 경험과 외국의 사례를 보며 국내 검시제도의 문제점과 법의학의 발전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그는 우리나라의 검시제도가 오랫동안 무관심 속에 방치돼 허술한 과거의 관행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어 사후인권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고 말한다. 사후인권의 보호는 선진국의 잣대이기도 하다. 검시제도의 개선은 제도적인 개선이 수반되어야 함으로 국가나 정치적 차원의 관심이 절실하다. 저자는 우리나라도 우선 법의학에 대한 인식전환이 되고, 이의 중요성을 감안하여 제도의 개선, 전문 법의학자의 양성 등 뒤따라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검시를 통해 죽은 자의 권리를 지킨다
사후인권은 복지국가의 목표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자연스러운 죽음이 있지만, 예상하지 못한 의문의 죽음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 이를‘변사(變死)’라고 한다. 가끔 뉴스를 보면 보험금을 타낼 목적으로 애인을 살해하거나 부모를 살해하는 사건을 접한다. 얼마 전에도 한 남성이 보험금을 타기 위해, 마치 산낙지를 먹고 애인이 죽은 것처럼 위장한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은 질식사로 묻힐 뻔 했지만, 검시 결과 질식사가 아님이 판명됐다.
이처럼 검시를 통해 정확한 사인을 밝히고, 억울한 죽음을 해결할 수 있다. 예전에는 복지 국가의 개념이 국민이 살아있는 동안의 인권을 지키는 것을 목표로 했다면, 이제는 선진국일수록 사후 침해된 권리가 있다면 이를 바로잡는 것을 복지국가의 목표로 삼고 있다. 이 책은 살아있을 때의 인권뿐만 아니라 죽음 이후의‘권리’에 대해 많은 것을 설명하고 있다.
네 갈래로 나눠진 검시제도, 사인 구명이 어렵다
법의전문의 양성과 전문검시제도 개선이 시급하다
우리나라 검시의 주체는 검사, 사건 현장 수사는 검사를 대신해 경찰관, 죽음의 증명은 의사, 부검의 허락은 법원, 이렇게 네 갈래로 검시의 책임이 나누어져 있다. 그러다 보니 사건의 신속, 정확한 해결에 허점을 보이기도 한다.
미국, 영국 등 전문검시제도를 시행하는 나라에서는 법의관 또는 검시관을 따로 두어 검시만을 전담하도록 한다. 미국 드라마 <CSI>에서 보듯이 변사자의 통보를 받은 법의관은 사망현장에 출동해 검안을 하고, 부검여부 및 시체의 가족인계 여부를 결정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부검을 하기 위해서는 경찰이 변사라고 판단해야 하고, 이를 근거로 검사가 법원에 압수수색영장을 청구해야만 가능하다. 법원이 영장을 발부하면, 이를 근거로 의사에게 부검을 의뢰한다. 사건현장의 파악도 어렵고, 여름에는 시체가 현장에 2~3일 방치되는 경우 부패가 빠르게 진행되기 때문에 이는 정확한 사인구명이 어렵다.
외관상으로는 아무런 외상이 없는 경우에도 부검을 해보면‘변사’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검시의 비전문가인 검사, 경찰관, 일반의, 판사에 의해 부검여부가 판단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범죄와 관련된 시체의 경우도 부검을 하지 않고 단순히 변사체로 처리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럴 경우 그 죽음은 영원히 구명될 기회를 잃게 된다. 이것이 우리나라 검시제도가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점이다.
저자는 우리나라도 이런 불합리한 검시제도의 개선이 시급하며, 고도의 지식과 기술을 습득한 전문성을 지닌 법의전문의 양성과 검시만을 전담하는 전문직 검시체제로 바꿔야 하는 이유임을 강조한다.
의과대학 법의학 교실 도입도 중요
검시제도 개선에 국가적인 차원의 관심을 기울여야
우리나라도 광복 이전까지는 의과대학에 법의학 교실이 있었다. 하지만 광복 이후 미국식 의학교육 제도를 도입하면서 법의학 교실이 없어졌다. 미국은 전문검시제도가 있기 때문에 별도의 법의학 교육이 없어도 상관없다. 하지만 국내는 전문검시제도가 없는 상황에서 별도의 법의학 교육마저 이루어지지 않아 검시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거나 불충분한 상태의 의사들이 검시를 담당하고 있다. 국민의 죽음을 돌보는 막중한 책임을 수행하는 의사들이 검시에 대한 특별한 교육을 받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정확한 죽음의 원인을 밝히고, 침해된 인권을 바로잡기 위해 의과대학, 법과대학 등에서 법의학 교육을 제도적으로 실시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는 법의학자의 수도 부족하지만, 대부분이 대도시에 편중되어 있다. 지방 오지에서 변사체가 발견될 경우 전문지식이 없는 의사가 정확한 사인을 구명하기란 어렵다. 검안에 관한 전문지식만이라도 단기간 동안 집중적으로 훈련해 검안전담의를 양성, 검사가 정확한 사건 판단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할 이유다.
우리나라 법률에는 사법검시의 대상이 되는‘변사’의 개념에 대한 규정이 없다. 수사관의 자의적인 판단에 따라 부검여부를 결정할 수 있기 때문에 부검을 하지 않아 범죄가 은폐될 위험도 많다. 우리나라도 변사의 가이드라인을 정해 검시의 대상이 되는 기준을 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
검시제도의 후진성을 탈피하고, 전문적인 검시제도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개인, 사회적인 차원을 넘어 국가적인 차원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이에 관심을 가지고, 제도를 합리적으로 개선해 나갈 깨어있는 정치인도 요구된다.
예술가의 작품을 부검하는 법의탐적학
문학 예술 역사와 접목한 법의학의 새로운 분야!
이미 고인이 된 경우 시신이 보존되어 있다면 부검을 실시할 수 있겠지만 간혹 시신마저 없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는 그동안 법의학의 대상으로 삼지 않았다. 하지만 고인에 관한 문헌이나 예술작품 등이 남아 있다면 이를 근거로 사인을 밝히는 것 또한 법의학이 해야 할 새로운 과제이다. 저자는 이를‘법의탐적학’이라 칭하고, 그 첫 시도로 러시아의 유명 음악가 차이코프스키의 관련 문헌들을 분석했다. 당시 제정 러시아 정부는 차이코프스키의 사인을 콜레라로 발표했지만, 실은 그가 동성애자였기 때문에 내려진 일종의 사약을 먹고 사망했음을‘북오톱시(책부검)’을 통해 밝혀냈다.
현재의 법의학은 형사사건의 해결에만 치중되어 있다. 하지만 앞으로는 역사, 문학, 예술 등 보다 넓은 분야로 확장될 것이다. 이 분야는 법의학의 새로운 블루오션이라 할 수 있다. 많은 법의학 후학들이 이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해 나간다면 큰 업적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이 학문은 유명 예술가들의 추측이 난무한 억울한 죽음을 밝히는데 기여하고, 역사, 문학, 예술 등과 법의학을 접목시키는 일종의 융합과학으로 각광받을 수 있을 것이다.
본문 속으로…
최근에는 복지국가가 지향하는 목표를 살아있는 동안의 복지뿐만이 아니라 국민이 사망할 경우 그 사인을 정확히 구명하는 것을 필수조건으로 하고 있다. 이는 사망자 개인 및 이와 관련된 사람들의 모든 권리의 적정한 정리, 그리고 사법작용으로의 사회질서 유지에 매우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복지국가의 목표는 사인구명에 있다, 16쪽
우리나라는 국민의 죽음을 전담하여 돌보는 직종이 없다. 검사가 검시의 주체이고, 대부분의 검시는 검사를 대신해 경찰관이 집행한다. 검시를 위해서는 의사의 검안이 필수적이며 죽음을 증명, 확인하는 것은 의사에 의해 행해진다. 또 변사체의 경우 국가의 허락을 얻어 부검하도록 되어 있으며, 이것은 법원의 판사가 검토하고 결정한다.
즉 우리나라에서는 검시에 검사, 경찰관, 의사, 판사의 네 직종이 참여하고 있는데 이들은 모두 본연의 직무가 있고 검시는 부수적인 셈이다. 이렇듯 우리나라 검시의 맹점은 국민의 죽음만을 전담해서 보살피는 외국의 검시관이나 M.E.와 같은 직종이 없다는 것이다.
-검시는 부수업무가 아니다, 19쪽
법의탐적학은 유명한 역사적 인물(예술가, 작가, 과학자, 정치인 등)들의 사인이 불명하거나 해석의 착오로 억울한 입장이 되었다고 추측되는 경우 그 인물 생전의 각종 자료(자서전, 전기, 일기, 편지, 창작 작품) 등을‘북 오톱시(Book Autopsy)’하여 억울함을 해소시키는 것이다. 즉 역사, 문학, 예술 등과 법의학을 접목시키는 일종의 융합과학인 셈이다.
-법의탐적학도 법의학의 한 분야다, 242~243쪽
지은이 / 문국진
한 젊은 의학도가 비를 피하기 위해 들어간 작은 책방에서 한 권의 낡은 책을 접하게 되었다.“인간의 권리를 다루는 의학”이라는 한 줄에 그의 가슴은 방망이질 쳤고, 인생의 진로를 바꾸게 된다. 법의학이라는 학문에 입문하게 된 것이다.
문국진 그는 우리나라 최초의 법의학자이다. 법의학 불모지에서 외롭지만 꿋꿋이 한 길을 걸어, 오늘날 한국의 법의학이 여기까지 오는 데 지대한 역할을 한 인물이다. 1925년생으로 호는 도상(度想), 필명은 유포(柳浦).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창립멤버이자 법의학과 과장,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법의학 교수, 뉴욕대학교 법의학 객원교수 등을 역임했다. 현재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대한민국학술원 회원, 대한법의학회 명예회장, 한국의료법학회 고문,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자문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법의학 전문서적으로 《최신 법의학》, 《고금무원록》을 비롯해 23권, 법의학 교양서적으로 《새튼이》, 《지상아》 등 7권, 예술과 의학의 만남을 다룬 서적으로 《명화와 의학의 만남》, 《미술과 범죄》 등 12권, 일본 저서로 《美しき死體のサラン》, 《日本の死體, 韓國の屍體》(공저), 《賠償科學槪說》(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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