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경험을 담은 리얼 외교 현장 교섭의 기술

운을 부르는 외교관


이원우 지음 | 판형 149×214 |면수 272면,
분야 자기계발 | 발행일 2019년 11월 21일
ISBN 979-11-86578-80-3 13340 | 값 15,000원


■ 이 책은…

“운이 좋은 사람은 뭔가 다르다.
운도 가만히 있으면 오지 않는다.
운은 우연의 결과물이 아니다.
스스로 행동함으로써 얻어진다.”

지금까지 현장 교섭의 실제 경험을 다룬 책은 없었다

아무리 좋은 칼이라도 칼집에서 빼서 쓰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또한 빼서 사용하더라도 제대로 휘두르지 못하면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없다. 교섭이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교섭이란 자신이 원하는 일을 성취하기 위하여 상대방과 서로 의논하고 절충하는 관계의 기술을 총칭한다. 교섭의 기술을 다룬 책을 많이 읽는다고 교섭력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뛰어난 리더들의 교섭 원칙과 사례를 참고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직접 발로 뛰고 부딪히면서 자신만의 교섭력을 개발·확장해나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
1988년 제22회 외무고시에 합격하여 31년 간 외교관으로 활동한 이원우의 󰡔운을 부르는 외교관󰡕은 미국, 영국, 러시아 등지에서 자신이 직접 경험한 외교적 사례를 중심으로 교섭의 기술을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은 저자가 외교관이 되기 전 글로벌 기업인 한국IBM에 입사해 3년 반을 근무하면서 배웠던 LSP(Logical Selling Process)라는 교섭기술로 외교 현장의 난제들을 해결하는 과정을 생생히 담아내고 있어 교섭에 대한 기술은 물론 우리나라 외교의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돌아보게 한다.
동해병기의 기회는 누가 어떻게 날려버렸는가, 한러비자면제협정은 어떻게 진행되었고 고위공직자 외유감시 프로그램은 왜 폐기되었는지 등 이 책에 소개된 36개의 외교 에피소드는 현장 교섭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다윗의 짱돌과 교섭의 기술 그리고 ‘놀부의 비극’들

저자는 교섭의 기술을 ‘다윗의 짱돌’에 비유한다. 다윗이 맨손으로 골리앗과 싸웠다면 치명상을 입고 질 수밖에 없겠지만, ‘짱돌’이라는 무기가 있었기 때문에 골리앗을 물리칠 수 있었다. 이처럼 자신도 LSP라는 교섭의 기술을 각각의 상황에 맞게 무기처럼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각국의 이익이 첨예하게 부딪히는 치열한 외교 현장에서 실질적인 성과를 얻어낼 수 있었다고 말한다. ‘논리적인 판매과정’(Logical Selling Process)이라고 번역할 수 있는 LSP는 감정보다는 논리를 중요시하는 교섭방법이다. 쉽게 말해 LSP란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 기술’이며, 나의 패보다는 남의 패를 읽는 것이 중요하고 또한 자기 패는 남에게 읽히지 않도록 하는 포커의 기본 원칙과 상통한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LSP의 교섭과정은 1)인사(Greetings), 2)친밀감표시(라뽀, Rapport), 3)상대방의 입장에서 이야기하기, 4)상대방이 필요로 하는 사항 종합, 5)반론 대응(Objection Handling), 6)끝인사 및 차기 면담 약속 등의 단계로 구성된 인간과계의 원칙이자 협상의 흐름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원칙과 흐름은 고정된 것이 아니다. 상황에 따라 강조해야 할 사항들이 달라지기 때문에 한곳에서 성공한 방법을 다른 곳에서 동일하게 적용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저자의 경험적 판단이다.
협상과 교섭의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실패하게 되는 근본 이유는 무엇일까? 인간은 우연한 방법으로 한번 성공할 경우 그 방법을 시간이 흐르고 환경이 바뀐 뒤에도 똑같이 적용하려는 본성이 있어 결국 실패하게 된다. 이런 현상을 저자는 ‘놀부의 비극’ 패러다임이라고 정의한다. 흥부의 성공을 목도한 놀부가 자신도 부자가 되기 위해 흥부처럼 제비다리를 부러뜨리는 것은 환경의 변화를 생각하지 않고 동일한 방법을 적용하는 오판의 일종으로서, 이런 현상은 지금도 빈번히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판단이다. 우연히 사게 된 주식이 가격이 폭등하면서 큰 이익을 본 사람을 보고 더 큰 돈을 벌기 위해 은행에서 거금을 빌려 같은 주식을 대량으로 구매했다가 주식이 폭락하는 바람에 본전을 다 날린 것은 물론 엄청난 빚을 지게 되는 사람들이 바로 현대판 놀부라 할 수 있다.
저자는 시간이 지나 환경이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교섭 방법을 사용하다가 큰 실패를 겪게 되는 역사적 사례를 이 책의 1장 ‘조심해야 할 놀부의 비극’에서 다양하게 제시한다. 카르타고의 한니발이 같은 전술을 구사하다가 로마의 스키피오에게 대패를 당한 사례, 선조와 원균이 이순신의 전술을 흉내 내어 함대를 이끌고 부산까지 가서 왜군 함선들을 섬멸시키려다 전멸당한 사례, 기량이 뛰어나고 평소 실패를 해본 적이 별로 없는 항우가 천자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역사의 조연이 된 사례 등을 통해 ‘놀부의 비극’ 패러다임을 심층적으로 설명하는 내용들은 LSP라는 교섭기술이 과거는 물론 현재에도 유용한 교섭의 원칙이라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놓쳐 버린 동해 병기의 기회

이 책의 2장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다’, 3장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라’, 4장 ‘논리적으로 대응하라’, 5장 ‘러시아를 재조명하다’에 소개된 36개의 외교 에피소드는 단순한 경험의 나열이 아니라 LSP의 6단계 과정을 체험으로 녹여낸 현장 교섭기술의 사례들이다.
이중 놓쳐 버린 동해 병기의 기회, 외규장각 의궤 반환교섭에 대한 에피소드는 교섭의 기술에 따라 국가적 차원의 실익이 어떻게 좌우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특히 교섭의 주체인 외교공무원들이 현장 교섭을 제대로 해내지 못할 경우 국가에 큰 손실을 가져오게 되는데, 그 대표적인 사례가 동해 병기의 기회를 놓친 것이다.
‘동해(East Sea)’와 ‘일본해(Sea of Japan)’를 병기하는 문제는 일본과 우리나라의 입장이 엇갈리는 첨예한 외교 현안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공식 입장은 동해를 단독 표기해야 하는 것이지만 일본과 합의가 이뤄질 때까지 ‘동해’와 ‘일본해’를 병기하자는 것이다. 이에 맞선 일본은 ‘일본해’ 표기만을 유일하게 고수하고 있다.
저자가 2000년 주미대사관 경제과에서 1등서기관으로 근무하고 있던 때 서울대학교의 모교수가 미국지명위원회 산하기관인 외국지명위원회에 동해병기의 필요성을 설명하러 왔고, 이때 저자는 외교관으로서는 최초로 지명위원회에 옵서버로 참석하게 되었다고 한다. 지명에 대한 전문가는 아니지만 나름의 준비를 하기위해 미국지명위원회 부위원장을 맡고 있던 미국 국무부의 간부를 만나 면담을 한 저자는 미국지명위원회가 동해를 일본해와 병기하는 것에 대해 무조건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저자와 면담을 했던 국무부 간부는 미국지명위원회가 반대한 사항은 ‘동해/일본해’, 즉 슬래시(/) 형식의 병기이지 ‘일본해(동해)’, 즉 괄호 형식의 병기에는 반대하지 않는다는 유용한 정보를 저자에게 알려준다.
이 사실을 안 저자는 위원회에서 발언권을 얻어 과거 일본이 한국을 침탈한 역사와 일본이 미국의 진주만을 공격한 사례를 동시에 언급하면서 동해병기의 역사적 정당성을 피력했고, 저자의 연설에 동감한 CIA와 국무부 대표로부터 CIA 지도와 국무부 지도에 동해를 병기해주겠다는 약속을 얻어냈다.
매년 발간되는 CIA 지도는 전 세계적으로 많이 사용되고 있는 지도로서 실질적으로는 미국의 정부지도로 인식되고 있다. 그런 실정을 감안한다면 CIA 지도에 동해가 병기되는 것은 매우 큰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이로써 우리 정부는 당연히 미 국무부에 미국 정부 지도에 동해병기를 해달라고 요구할 권리가 생겼다. 하지만 이후 우리 대사관 간부들의 이해할 수 없는 후속 업무처리로 동해병기 문제는 흐지부지 무산되어 큰 아쉬움을 남기게 되었다.

교섭에서의 성공은 운인가 실력인가? 발로 뛰는 모습으로 운을 부르다

저자는 3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외교관으로 지내오면서 여러 번 위기 상황에 처했고 그때마다 운 좋게 살아남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운은 우연의 결과물이 아니다. 󰡔운을 부르는 외교관󰡕은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피하지 않고 부딪혔던 저자의 적극성과 골리앗을 쓰러뜨린 짱돌과 같은 교섭의 기술로 위기를 극복하고 개척해나가는 과정을 오롯이 보여준다. 그래서 이 책은 외교관이 되려는 이들은 물론 삶을 열정적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소중한 지혜를 전한다.
그에 대해 저자는 “외교 현장이나 생활에서 내가 겪었던 것과 똑같은 사건들이 되풀이 되지는 않겠지만 누구라도 예상하지 못한 위기의 상황에서 당황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특히 이것은 이론 수업이 아니라 생생한 현장 경험에 의한 것이라는 점에서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라고 말한다.
외교관이라는 업무가 보고서를 잘 작성하고 윗사람을 잘 보필한다고 유능한 것이 아니다. 국내든 국외에서든 우리 국민 개개인의 권리와 재산을 국가가 보호하고 지켜준다는 신뢰감을 주는 것도 중요하다. 저자는 다른 사람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마다않고 옷 벗을 각오로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한 공로로 재외국민들이 제정하여 수여하는 ‘발로 뛰는 영사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 책 속으로

이런 사례들을 분석해 보면 공통적인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한니발과 프랑스의 경우에는 상황이 바뀌었는데도 과거에 자신에게 큰 성공을 가져다 준 방법에 집착하여 대패大敗를 하게 되었다. 이 경우에는 흥부와 놀부가 동일인이라고 할 수 있다. 임진왜란의 경우는 이순신 장군이라는 흥부가 한산도에서 거둔 대단한 승리를 본 선조와 원균이라는 놀부가 흥부의 전술을 흉내 내어 대함대를 이끌고 부산까지 가서 왜군 함선들을 섬멸시키려다 오히려 가는 동안 매복하여 기다리고 있던 적군에 의해 전멸당한 사례인 것이다.
-55쪽 <조심해야 할 ‘놀부의 비극’> 중에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교섭의 기술’은 우리 주위에 있는 중요한 사람들과의 관계를 좋은 상태로 유지시키면서도 만약 일이 잘못되어 위기 상황에 봉착하게 되더라도 현장에서 즉시 효과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노하우를 의미한다. 어떻게 보면 LSP는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다른 측면에서 보면 약자에게 필요한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천 냥을 빌린 사람에게 필요한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63쪽 <‘교섭의 기술’로 승부하라> 중에서


라뽀는 상대방이 호의적인 태도로 진지하게 들을 수 있는 사전환경을 조성한다는 점이 교섭의 필요조건이다. 하지만 그 자체만으로 상대방을 설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날 저녁 주재관들이 제기한 질문에 대해 설득력 있는 반론, 즉 반론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면 그들도 기존의 반대 입장을 번복할 확실한 이유를 찾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는 자신들의 부처를 제대로 설득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한-러 비자면제협정 추진과정의 사례는 큰 영향력을 가진 주재관들을 설득하는 데 라뽀는 물론 반론대응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임을 잘 보여주고 있다.
-109~110쪽 <한­러 비자면제협정 관련 국내부처 설득> 중에서

외교부 본부에서 1년 반 동안 IVI 업무를 하면서 느낀 것은 끝없는 절망감이었다. 미국이나 일본과 같은 선진국 정부뿐만 아니라 우리 예산당국으로부터도 버림받았던 IVI는 수천억 원 규모에 달하는 예산을 확보해야 했지만 이는 누구의 눈에도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시도했던 미국인 독지가에게 호소하는 방법은 기적과도 같은 결과를 가져왔다. 미국인은 인도주의적 사업에 호의적일 수 있다는 사고의 전환을 하게 된 것은 새로운 관점에서 생각해 보라는 교섭기술의 원칙을 나도 모르는 사이에 사용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129쪽 <국제백신연구소 살리기> 중에서

외교현장은 상대 입장에서 생각하고 말해야 하는 것을 늘 실천해야 하고 경험하게 된다. 상대 입장에서 이야기한다는 것은 두 가지 경우가 있다. 첫 번째는 상대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 입장에서 대화하는 것이 다. 두 번째는 상대방이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얘기하는 것이다.
-146쪽 <국회의원 보좌관 설득> 중에서

D의 말처럼 미국 정부에서 발간하는 세계지도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CIA 지도를 지칭하는 것인 만큼 여기에 동해가 병기된다면 미국 정부에서 동해를 병기하기로 결정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또한 미국지명위원회에서 ‘( )’ 괄호 병기를 반대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실하게 확인한 것도 상당한 수확을 거둔 것이라 생각되었다.
-160쪽 <놓쳐 버린 동해 병기의 기회> 중에서

프랑스가 외규장각 서적 5,000여 권을 불 태웠던 것을 를 통해 공개적으로 방송한 것은 그동안 문화선진국인 프랑스가 인류의 공동유산인 《외규장각 의궤》를 보유해야 한다고 주장해오던 논리에 대한 효과적인 반론대응이었다고 할 수 있다.
-177쪽 <외규장각 의궤 반환교섭의 전환점> 중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해외출장정보 사이트에 대한 강력한 지지는 반대여론을 일거에 잠재웠다. 얼마 뒤 우리 외교부의 L 차관은 국무회의에서 해외출장정보 사이트에 대하여 브리핑하였고 외교부 대변인실에는 사이트 운영팀이 신설되었다. 그렇게 해서 외교부 내에서도 철없는 사업, 무모한 사업으로 치부되어 폐기 일보 직전이었던 해외출장정보 사이트는 노무현 대통령의 적극적인 지원에 힘입어 가장 성공적인 혁신 사례 중 하나로 인정받게 되었다.
-187쪽 <고위공직자 외유감시 프로그램> 중에서


■ 지은이

이원우

1959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경영대학을 졸업한 후 한국 IBM에서 3년 반 일했다. 1988년 제22회 외무고시에 합격하여 31년 간 외교관으로 활동하였다. 1992년 주블라디보스톡 총영사관을 개설한 뒤 주미국대사관에서 1등 서기관으로 근무하였다. 외교부 정보화담당관과 구주1과장을 역임한 후 주영국대사관과 주러시아대사관에서 총영사로 재직하였다. 1991년 모스크바 외교아카데미에서 러시아어를 연수한 최초의 한국 외교관으로서 2012년 재외동포신문으로부터 ‘발로 뛰는 영사상’을 수상하였다.


■ 목차


프롤로그


운은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1장 교섭의 현장, 외교관으로 서다

01 대학에서 진로를 생각하다
02 늦깎이로 외교관이 되다
03 이상한 공무원 사회
04 혼자만의 당당한 저항
05 조심해야 할 ‘놀부의 비극’
06 ‘교섭의 기술’로 승부하라


운을 부르는 교섭의 기술1
2장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다

EPISODE 01 | 열심히 들어주라 - 영국 한인사회의 기피 인물
EPISODE 02 | 약자를 우선 고려하라 - 영국한인회 분쟁 중재
EPISODE 03 | 먼저 상대를 칭찬하라 - 영국 국경청 책임자 면담
EPISODE 04 | 관심사를 파악하라 - 대한항공 승무원 비자 문제 해결
EPISODE 05 | 자부심을 부추겨라 - 러시아 아파트 임대 재계약
EPISODE 06 | 인맥을 활용하라 - 한­러 비자면제협정 관련 국내부처 설득


운을 부르는 교섭의 기술2
3장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라

EPISODE 01 | 상대의 능력을 인정하라 - 러시아에서 한국인 사업가 살해범 검거
EPISODE 02 | 끝까지 포기하지 마라 - 국제백신연구소 살리기
EPISODE 03 | 상대방의 입장을 존중하라 - 최우수 홈페이지의 구멍
EPISODE 04 | 혈처를 찔러라 - 광주노벨평화상정상회의 예산 지원
EPISODE 05 | 때로는 정면 돌파하라 - 활빈단 회장과의 면담
EPISODE 06 | 눈높이에서 말하라 - 국회의원 보좌관 설득


운을 부르는 교섭의 기술3
4장 논리적으로 대응하라

EPISODE 01 | 납득할 수 있는 이유를 대라 - 놓쳐 버린 동해 병기의 기회
EPISODE 02 | 상황을 피하지 마라 - 외규장각 의궤 반환교섭의 전환점
EPISODE 03 | 옳은 일은 과감히 도전하라 - 고위공직자 외유감시 프로그램
EPISODE 04 | 반박 논리로 접근하라 - 난타 공연팀의 영국 입국 불허
EPISODE 05 | 순발력이야말로 최고의 무기다 - KBS 모스크바 특파원 구하기
EPISODE 06 |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 모스크바 한국학교의 폐교 위기 극복


운이 좋은 사람은 다르다
5장 러시아를 재조명하다

EPISODE 01 | 모스크바의 풍경 - 구소련 붕괴 후 불어온 변화
EPISODE 02 | 외교행랑의 비밀 - 주블라디보스토크 총영사관 창설 해프닝
EPISODE 03 | 남북 총영사관 노래자랑 - 나호트카 남북 동포 구정잔치
EPISODE 04 | 민족적 정서가 비슷한 러시아 - 구소련 공산 치하의 억눌린 삶
EPISODE 05 | 저승의 문턱에서 구한 북한 동포 - 다사다난했던 러시아 외교현장
EPISODE 06 | 러시아에 잠든 항일투사 - 다시 보는 러시아


에필로그

김문정은 왜 이 회사를 10년째 다닐까


이진민 지음 | 판형 135×195 |면수 272면
분야 경제경영(마케팅/세일즈) | 발행일 2019년 11월 5일
ISBN 979-11-86578-78-0 13320 | 값 12,000원


■ 이 책은…

‘선영아 사랑해!’ 2000년 어느 날, 온 국민의 시선을 집중시킨 이 사랑 고백은 저자 이진민이 14년 동안의 카피라이터 생활을 뒤로하고 시작부터 진두지휘했던 한 여성포털 사이트의 출범을 알리는 광고였다. 그렇게 깜짝 고백으로 선영이들을 만난 지 거의 20년 세월이 지난 지금, 아직도 이 사랑고백은 진행 중이다. ‘선영아, 함께해!’ 라면서.
“나는 뼛속까지 여자이고, 그런 여자를 사랑하고 싶고, 여자로서 행복해지고 싶은 사람이다. 일도 사랑도 여성으로서, 그들과 함께, 그들을 위한 일을 하고 싶었다.”
저자는 대학시절부터 시작된 여드름 고민 때문에 세계 구석구석을 뒤지면서 찾아낸 ‘천연화장품’을 세상의 모든 여성들, 바로 선영이와 함께 나누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아이소이’라는 천연화장품 회사를 만들었다.
10년 전 벤처기업으로 출발한 ‘아이소이’는 현재 천연화장품 업계의 대표주자로 우뚝 섰다. ‘더마테스트’라고 불리는 독일의 알러지 테스트에서 전 제품 최우수를 획득했고, 국내 화장품 회사로는 처음으로 미국의 ‘EWG Verified’ 마크를 획득했으며, 미국의 유기농 마켓인 홀푸드에 전 제품 라인이 입점했다. 아이소이는 소중한 가치, 사람에 대한 생각, 경영과 나눔에 대해 남다른 철학을 실천하고 있는 기업으로 착한 사람들과 착한 화장품, 착한 경영을 지속적으로 펼쳐오는 정직한 기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책은 마케터로 시작해서 아이소이 화장품의 CEO가 된 이진민의 마케팅 이야기이면서 직원들이 말하는 직장문화 엿보기라고 할 수 있다. 소비자들을 만족시키는 최상의 제품을 만들고, 직원들이 즐겁게 회사에 다닐 수 있도록 하며, 주변에 선한 영향력을 더 많이 끼칠 수 있도록 궁리하고 실천하고 있는 천연화장품 회사 아이소이의 10년에 대한 경영보고서이기도 하다.


■ 출판사 서평

마케터로 시작해 ‘선영아 사랑해!’ 마이클럽을 만들고
아이소이 화장품 CEO가 된 이진민의 마케팅 이야기

이진민, 그녀는 한 마디로 잘나가는 마케터였다. 이화여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제일기획 최연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한국 지형에 강하다, 애니콜’ ‘나는 나 톰보이’ 등 다수 카피로 유명세를 떨쳤다. 승승장구하던 그녀가 14년 동안의 카피라이터 생활을 뒤로하고 ‘선영아 사랑해’라는 카피로 세간의 관심을 끌면서 여성포털 사이트 ‘마이클럽’을 진두지휘하고 나섰다.
“나는 뼛속까지 여자이고, 그런 여자를 사랑하고 싶고, 여자로서 행복해지고 싶은 사람이다. 일도 사랑도 여성으로서, 그들과 함께, 그들을 위한 일을 하고 싶었다.”
오직 여성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을 온전히 담아서다.
그녀는 갑작스럽게 마이클럽의 본질이 바뀌고 초기 멤버들이 밀려나면서 다시 한 번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된다. ‘여성을 위한’이라는 자신의 인생의 꿈을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란다.
대학시절부터 시작된 여드름 고민 때문에 세계 구석구석을 뒤지면서 찾아낸 ‘천연화장품’을 세상의 모든 여성들, 바로 선영이와 함께 나누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아이소이’라는 천연화장품 회사를 만들게 된 것이다.
10년 전 벤처기업으로 출발한 ‘아이소이’는 현재 천연화장품 업계의 대표주자로 우뚝 섰다. ‘더마테스트’라고 불리는 독일의 알러지 테스트에서 전 제품 최우수를 획득했고, 국내 화장품 회사로는 처음으로 미국의 ‘EWG Verified’ 마크를 획득했으며, 미국의 유기농 마켓인 홀푸드에는 뉴욕점을 시작으로 2019년 현재 약 120개까지 늘어났다. 아이소이는 소중한 가치, 사람에 대한 생각, 경영과 나눔에 대해 남다른 철학을 실천하고 있는 기업으로 착한 사람들과 착한 화장품, 착한 경영을 지속적으로 펼쳐오는 정직한 기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책은 마케터로 시작해서 아이소이 화장품의 CEO가 된 이진민의 마케팅 이야기이면서 천연화장품 사업 10년에 대한 보고서이다.


믿음과 신뢰 담아 아이소이(isoi:‘나는 정말 똑똑해’)라 부르고
선영이를 위한 약속으로 4가지 아이소이즘 만들어

‘isoi’에는 ‘I am So Intelligent’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나는 정말 똑똑해!’ 쯤으로 해석할 수 있는 이 말은 평소 저자가 선영이에 대해 끊임없이 되풀이해 말해왔던 ‘우리나라 여자들이 얼마나 똑똑한데!’라는 믿음이 듬뿍 담긴 말이다.
“조금은 어리숙하고 뒤처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언제나 중심을 지키며 세상을 이끌고, 옳고 그른 것과 좋고 나쁜 것을 판단할 줄 안다. 때로는 따라쟁이의 지갑을 노리는 술수에 말려 실수할 때도 있지만 그것을 통해 배울 줄 알고, 또 배운 것을 나눌 줄도 안다.”
이것이 저자가 알고 있는 수많은 선영이들의 모습이다. 천연 화장품 불모지에 독일 천연 화장품 브랜드인 로고나를 처음 한국에 들여올 때부터 선영이에 대한 믿음은 확고했다. 피부에 부작용이 없는 좋은 제품임을 금방 알아봐 주었기 때문이다.
이런 선영이와 오랜 시간 교감하기 위한 약속이면서 시간이 흘러도 초심을 지킬 수 있도록 아이소이만의 원칙, 아이소이의 철학을 세웠다. 이것을 아이소이즘(isoism)이라고 부른다.
그 첫째가 바로 몸에 좋지 않은 나쁜 성분은 절대 넣지 않겠다는 무첨가 원칙이고, 최고의 품질을 가진 원료를 사용한다는 원료 최고주의가 두 번째 원칙이다. 세 번째는 100% 자연 성분 중에서도 피부에 가장 자극이 적은 원료를 찾아 사용하겠다는 피부 저자극주의이고, 피부 자체의 자생력을 키우고 최고의 개선 효과를 낼 수 있는 제품을 만든다는 효과 제일주의가 네 번째 원칙이다.
이 책에서는 아이소이가 어떻게 10년이라는 기간 동안 국내 최고의 천연화장품 브랜드로 자리 잡게 되었는지, 그 근간이 되는 회사의 경영철학을 알려주고 있다.


김문정은 왜 이 회사를 10년째 다닐까?
직원들이 말하는 아이소이의 직장문화 엿보기

아이소이는 창업 10년을 맞고 있다. 아이소이의 팀장급 인원은 대략 10명 정도. 회사가 10년 이상 되면 처음 입사한 인력이 100% 그대로 계속 다닌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각자의 사정이란 게 있으니까. 하지만 아이소이는 적어도 팀장급 들 중에서는 그만 둔 사람이 아직 없다. 적어도 7년, 많게는 10년 이상 줄곧 이 회사를 다니고 있다는 뜻이다.
이 책의 제목에도 등장하는 김문정은 실제 7년 남짓 이 회사를 다니고 있다. 제목을 이렇게 지은 것도 저자 자신이 이루고 싶었던 회사, 만들고 싶었던 제품, 지키고 싶었던 철학을 비교적 잘 지켜가고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줄 거라는 직원들의 의견에 공감해 결국 이렇게 정했다.
확실히 아이소이의 직원들은 다른 회사에 비하면 오래 다니는 경우가 정말 많은 편이다. 중소기업인 아이소이가 직원들에게 충분한 대우를 해줄 형편이 못 되는 게 당연하겠지만 적어도 그들 개개인을 만족시켜주는 뭔가가 있기 때문이다. 어떤 직원은 보수가 적당해서, 혹은 업무와 연계하여 여행을 다닐 수 있어서, 업무에 나름 보람을 느껴서 등등 각자가 가지는 이유는 다양하다.
이 책에서는 직원들이 직접 말하는 아이소이에 다니는 이유와 아이소이만의 차별화된 직장문화 등을 소개하고 있다.


■ 책 속으로

고객의 피부를 건강하게 지키는 똑똑한 화장품, 화학성분 범벅인 것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중요한 화장품, 천연의 순수함을 그대로 살려낸 순수한 화장품이 바로 아이소이인 것이다.
지난 10년의 세월 동안 선영이들은 아이소이라는 브랜드의 의미와 정체성이 그 이름을 달고 출시되는 모든 제품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는 것을 알아봐주었고, 고객의 피부를 지키는 ‘착한 화장품’이라는 것을 인정해 주었다. 마니아들이 생겼고 홈페이지에는 수많은 사용 후기들이 올라왔다.
-40쪽 <선영아, 넌 참 똑똑해> 중에서

있는 그대로 사랑하자는 게 우리 아이소이인의 마음이다. 설령 그 사람이 나와는 다른, 혹은 기대와 다른 면이 있다 하더라도 ‘그래도 사랑한다’는 마음을 담고 싶었다.
나는 이 ‘선영아 사랑해!’라는 지극히 평범한 말이 가지는 힘이 조금씩 더 확산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직원들이 “우리가 얼마나 정성들여 제품을 만드는지를 웹 드라마로 한번 만들어보면 좋겠다.”고 제안했을 때 그럼 제목은 ‘선영아, 사랑해!’로 하자고 한 것도 그 바람 때문이었다.
-54~55쪽 <웹드라마 ‘선영아 사랑해’> 중에서

화장품을 사용하는 여성을 사랑과 존중의 대상으로 보기는커녕 쉽게 현혹할 수 있는 돈벌이 수단으로 생각하면서 ‘화장품 마케팅’이 행해지고 있었다. 소비자를 바보 혹은 봉으로만 보는 것 같았다. 이런 매커니즘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나는 화장품 사업 초창기부터 아예 비싼 돈 드는 마케팅을 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좋은 원료로 착한 화장품을 만드는 데 더 정성을 쏟았다. 작은 회사가 소비자들의 마음을 얻는 비결은 오직 진실함에 있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
-111쪽 <착한 성분만 강조하는 화장품 거꾸로 마케팅> 중에서

채용 당시까지도 아토피가 개선되지 않았던 그녀는 자신이 직접 써봐서 설명을 더 잘할 수 있다면서 강력하게 직원이 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 패기와 제품에 대한 애정에 감동해 매니저로 채용했는데 기대 이상으로 활약하며 아이소이 매장의 보배가 되었다. 지금도 간혹 ‘그래도 화장품 회사인데 피부가 좋은 사람을 뽑아야 하지 않냐’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나는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피부는 우리 제품으로 좋아질 수 있으니 아이소이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을 뽑는다.
-134~135쪽 <피부 나쁘면 직원으로 딱이죠> 중에서

“그러고 보니까 작년 12월 아시죠? 그땐 한겨울에 하노이 갔잖아요. 그것도 한 열흘 가까이 간 거 같은데. 날씨는 더워 죽겠지, 실내에 들어서면 에어컨 때문에 추워죽겠지. 그거 막상 당하면 절대 쉬운 일 아닙니다. 그러니까 사장님, 이제 제발 좀…”
“뭐 어쩌라고? 원하는 게 뭐야?”
“그러니까 이제 제발 좀… 뉴욕 보내주세요.”
“에휴… 인간아, 일 좀 해 일 좀!”
그렇다. 난 그놈의 여행 때문에 이 회사를 못 그만둔다.
-219쪽 <내가 이 회사를 때려치우지 못하는 이유> 중에서


■ 추천사

피부 트러블로 고생해 본 사람들은 이것이 얼마나 사람을 힘들고 지치게 하는지 안다. 아이소이를 구매하는 모든 고객들은 이 험한 길에서 고생고생하다 만난 사람들이 많다. 우선 내가 그랬으니까. 그래서 나보고 피부가 건강하고 좋아 보인다고 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열심히 아이소이에 대해 떠들게 된다. 신념과 가치관이 분명한 브랜드 아이소이는 천연제품으로 우리 앞에 나타나 변함없이 원칙을 지키며 성장하고 있음이 고맙다.
-권보라 (대학교 교직원・아이소이 10년 고객)

아이소이와 함께한 10년 동안 내 피부는 놀랄 정도로 변했다. 물론 피부가 화장품만으로 달라질 수는 없겠지만 좋은 성분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에는 이윤을 쫓기보다 의미를 찾고 사람을 바라보며 성장해온 아이소이의 10년이 담겨있다. 아이소이를 만나고 처음부터 함께해온 나의 선택에 자부심을 느끼게 된다. 화장품을 들고 읽기조차 어려운 화학성분을 찾아내느라 애쓸 필요 없다. 그냥 아이소이를 선택하면 안심이 된다.
-양윤정(약사・아이소이 10년 고객)

아이소이를 알게 된 지 10년이 훌쩍 넘었다. 아이소이가 벤처였을 때부터 시작하여 천연화장품의 대표주자로 우뚝 선 지금까지 함께했다. 이 책엔 아이소이의 소중한 가치. 사람에 대한 생각, 경영과 나눔에 대해 어디서도 얻을 수 없는 보물이 들어있다. 착한 사람들과 착한 화장품, 착한 경영을 지속적으로 펼쳐오는 정직한 기업이 아이소이다. 나는 열혈 소비자로, 전속모델로, 지금은 여전히 최우수 소비자로 살고 있다.
-김혜은(영화배우)

아이소이는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을 통해 러시아에 고려인 교육문화센터와 베트남에 교육기관을 지속해서 세워왔을 뿐 아니라 오래 전부터 국내외 불우한 이웃들을 돕는 나눔을 실천해왔다. 우리가 느낀 감동처럼
-유원식(기아대책 회장)


■ 지은이

이진민

이화여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제일기획 최연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한국 지형에 강하다, 애니콜’ ‘나는 나 톰보이’ 등 다수 카피로 유명세를 떨쳤다. 어느 날 여성포털 마이클럽 창립멤버로서 ‘선영아 사랑해’를 히트시키며 또다시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이후 고질적인 피부 트러블 때문에 고민하다 천연화장품에 손을 대게 되었다. 처음에는 세계적인 유기농 화장품 브랜드인 로고나코리아를 판매하였고 10년간 세계 곳곳을 다니며 유기농 천연화장품의 노하우를 축적해서 2009년 ‘아이소이’를 만들어 국내 최초 천연화장품 시대를 열었다. 무늬만 천연이 아닌 실제 천연, 유기농 화장품으로 생산 제품 대부분을 까다로운 국제 환경 인증을 받아 미국 최고의 유기농마켓인 홀푸드에 진출, 히트를 시키며 세계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전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로도 활동했고 착한 화장품, 착한 경영을 실천하고 있다.

 

■ 목차


프롤로그

1장 선영아, 사랑해!

01 선영아, 여전히 널 사랑해
02 잘나가던 카피라이터를 버리고
03 지구 끝이라도 간다
04 선영아, 넌 참 똑똑해
05 흔들리지 않을 자신 있어?
06 우리나라 최초의 착한 성분, 착한 화장품
07 웹드라마 ‘선영아 사랑해’
08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 i♡i

2장 선영아, 안심해!

01 손 떨리게 비싼 불가리안 로즈 오또
02 까다로워서 이어진 바일란트와의 인연
03 그래, 그럼 우린 못 만들어
04 제발 저희 선베이스는 사지 마세요
05 EWG 회장으로부터 온 메시지
06 홀푸드 마켓에서 품절이라고?
07 착한 성분만 강조하는 화장품 거꾸로 마케팅
08 화장품 좀 아는 여자는 시크릿북을 읽는다
09 가로수 길 콘셉트 스토어
10 피부 나쁘면 직원으로 딱이죠
11 의심의 눈초리에서 인정의 눈빛으로

3장 선영아, 행복해!

01 나쁜 돈과 착한 돈
02 하고 싶어? 그럼 해보자!
03 회사에 행사가 너무 많다고?
04 연월차 쓰는 걸 왜 물어봐?
05 어떻게 하면 더 재미있게 놀까
06 아카데미가 심심하다고?
07 집밥 먹고 필라테스로 허리 펴야지
08 출장을 빙자한 해외여행
09 나눔의 가치, 같이의 가치

4장 선영아, 함께해! 직원들이 말하는 아이소이

01 나는 왜 이 회사를 7년째 다닐까?⋮김○정 (신상품개발팀)
02 90년생이 왔다!⋮최○숙 (오프라인 마케팅팀)
03 10년 넘게 갈색병만 쓰던 나⋮최○선 (오프라인 디자인팀)
04 나는 아이소이 대표 ‘골골이’⋮박○선 (온라인 마케팅팀)
05 내가 이 회사를 때려치우지 못하는 이유⋮이○욱 (오프라인 마케팅)
06 쉿! 우린 반품이 반가워요⋮신○은 (온라인 마케팅팀)
07 사장님보다 화장품이 더 좋아요!⋮한○진 (온라인 영업팀)
08 쉬는 것도 용기와 응원이 필요하다⋮김○은 (온라인 마케팅팀)
09 업무시간에 떠나는 유럽여행⋮김○우 (직영관리팀)
10 워킹맘이 더 대우받는 곳⋮유○연 (온라인 마케팅팀)
11 자랑이 적성입니다⋮전○덕 (홍보팀)
12 어떻게 해서 아이소이를 쓰게 되었냐면요⋮오○열 (오프라인 영업팀)
13 비밀의 방 회의가 무서워⋮김○태 (관리팀)
14 인생지사 새옹지마⋮주○영 (수출/면세팀)
15 착하게 살아야 할 이유를 찾다⋮진○섭 (온라인 마케팅팀)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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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되지 못한 비운의 왕세자들

홍미숙 지음 | 판형 152×215 |면수 280,

분야 역사, 한국사 | 발행일 2019111

ISBN 979-11-86578-79-7 03910 | 16,000

 

이 책은

 

왕이 되지 못하고 죽은 14명의 왕세자들

영국의 경제사가 토니(Richard Henry Tawney)역사가들은 승리한 세력은 눈에 띄는 곳으로 끌어내고, 그들이 집어삼킨 세력은 보이지 않는 곳으로 밀어 넣음으로써 현존하는 질서에 불가피성이라는 외관을 부여한다.”고 말했다. 그의 말은 역사란 승자의 기록이라는 불가피성을 인정한 것이라 할 수 있다.

E. H. (Edward Hallett Carr)󰡔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승자만이 아니라 패자도 역사를 이끈 주역임을 강조한다. 패자들의 역사는 비운이라는 수식어를 동반한다. 사람들은 승자의 운명보다 순조롭지 못하거나 슬픈 운명을 산 인물들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진다. 그들의 비극적인 삶을 봄으로써 마음에 쌓여 있던 우울함, 불안감, 긴장감 따위가 해소되고 마음이 정화되기 때문에 비운의 인물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다.

비운의 왕, 비운의 왕비, 비운의 왕자, 비운의 공주, 비운의 후궁 등의 이야기가 문화콘텐츠가 되어 책으로, 영화로, 연극으로, 뮤지컬 등으로 재구성되는 이유는 단순한 흥미 때문이 아니라 인간의 삶에 내재된 비극성에 대한 근원적 끌림이 있기 때문이다.

조선왕조의 수많은 이야기 중 왕이 되지 못하고 죽은 왕세자의 이야기가 많다. 폐세자가 5, 요절한 왕세자가 6, 요절한 황태자가 1명으로 모두 12명이나 된다. 그리고 2명의 왕세손이 조기 사망하여 왕이 되지 못했다.

󰡔왕이 되지 못한 비운의 왕세자들󰡕은 병으로건, 독살되어서건, 폐세자가 되어서건, 나라가 망해서건 왕위 서열 1위였음에도 왕이 되지 못하고 죽은 14명의 왕세자들과 왕세손들의 이야기를 사료에 입각해 정리한 후, 그들의 묘를 찾아 답사한 내용을 사진과 함께 싣고 있어 왕이 되지 못한 왕세자들의 비운을 생생히 전한다.

또한 책의 말미에 실린 간추린 조선왕조이야기와 부록으로 조선왕계도’, ‘조선의 왕릉 42’, ‘조선의 원’, ‘조선의 대원군 묘 3’, ‘태조의 4대조 왕릉 4’, ‘조선왕릉 상설도를 싣고 있어 조선의 역사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책 속으로

 

왕이 되지 못하고 죽은 14명의 왕세자들

영국의 경제사가 토니(Richard Henry Tawney)역사가들은 승리한 세력은 눈에 띄는 곳으로 끌어내고, 그들이 집어삼킨 세력은 보이지 않는 곳으로 밀어 넣음으로써 현존하는 질서에 불가피성이라는 외관을 부여한다.”고 말했다. 그의 말은 역사란 승자의 기록이라는 불가피성을 인정한 것이라 할 수 있다.

E. H. (Edward Hallett Carr)󰡔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승자만이 아니라 패자도 역사를 이끈 주역임을 강조한다. 패자들의 역사는 비운이라는 수식어를 동반한다. 사람들은 승자의 운명보다 순조롭지 못하거나 슬픈 운명을 산 인물들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진다. 그들의 비극적인 삶을 봄으로써 마음에 쌓여 있던 우울함, 불안감, 긴장감 따위가 해소되고 마음이 정화되기 때문에 비운의 인물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다.

비운의 왕, 비운의 왕비, 비운의 왕자, 비운의 공주, 비운의 후궁 등의 이야기가 문화콘텐츠가 되어 책으로, 영화로, 연극으로, 뮤지컬 등으로 재구성되는 이유는 단순한 흥미 때문이 아니라 인간의 삶에 내재된 비극성에 대한 근원적 끌림이 있기 때문이다.

조선왕조의 수많은 이야기 중 왕이 되지 못하고 죽은 왕세자의 이야기가 많다. 폐세자가 5, 요절한 왕세자가 6, 요절한 황태자가 1명으로 모두 12명이나 된다. 그리고 2명의 왕세손이 조기 사망하여 왕이 되지 못했다.

󰡔왕이 되지 못한 비운의 왕세자들󰡕은 병으로건, 독살되어서건, 폐세자가 되어서건, 나라가 망해서건 왕위 서열 1위였음에도 왕이 되지 못하고 죽은 14명의 왕세자들과 왕세손들의 이야기를 사료에 입각해 정리한 후, 그들의 묘를 찾아 답사한 내용을 사진과 함께 싣고 있어 왕이 되지 못한 왕세자들의 비운을 생생히 전한다.

또한 책의 말미에 실린 간추린 조선왕조이야기와 부록으로 조선왕계도’, ‘조선의 왕릉 42’, ‘조선의 원’, ‘조선의 대원군 묘 3’, ‘태조의 4대조 왕릉 4’, ‘조선왕릉 상설도를 싣고 있어 조선의 역사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조선의 폐세자

조선왕조는 1392717일 개국해 1910829일 일본에 의해 강제 합병될 때까지 519년가량 나라를 통치했다. 그러는 동안 4명의 왕세자가 폐위되어 살해를 당하거나 억울한 삶을 살았다. 조선의 왕세자들 중 원래 폐세자가 된 왕세자는 4명이 아니라 5명이다. 사도세자가 복위되어 폐세자의 딱지를 떼게 되어 4명이다. 복위되지 못한 4명의 폐세자들 중 태조의 막내아들 의안대군과 태종의 장남 양녕대군은 그들의 아버지가 왕위를 잘 지켰기 때문에 죽어서나마 대접을 받고 있다.

왕이 되지 못한 왕세자들 중에서도 폐세자들 만큼 억울한 경우도 없다. 별 탈 없으면 왕이 되었을 서열 1위에서 한순간 추락하게 되는 이들의 삶이 가장 처절할 것이다. 그야말로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이들의 삶을 들여다봄으로써 인생무상을 느끼게 된다.

 

요절한 왕세자들

조선왕조에서 왕이 되지 못하고 요절한 왕세자가 6명이나 된다. 세조의 아들 의경세자 이장, 명종의 아들 순효세자 이부, 인조의 아들 소현세자 이왕, 영조의 아들 효장세자 이행, 정조의 아들 문효세자 이항, 순조의 아들 효명세자 이영 등 6명이 보장받은 그들의 삶을 활짝 꽃피워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조선의 왕자로 태어나 왕세자로 책봉까지 받았는데 뭐 그리 급해 이 세상을 등지고 떠났을까? 이들은 애석하게도 하늘이 내린 명이 짧아 이 세상을 떠난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소현세자와 같은 경우에는 혈기 왕성한 나이에 아버지가 살해했다는 의심을 받으면서 죽어간 왕세자도 있다. 요절한 6명의 왕세자들을 만나본다.

 

폐세자 된 후 복위된 왕세자

폐세자 중 사도세자만이 죽은 뒤 유일하게 복위되었다. 사도세자는 아버지 영조에 의해 뒤주에 들어가기 전 서인으로 폐위되었다가 죽은 뒤 뒤주 밖으로 나와 왕세자로 복위되었다. 사도세자는 아들 정조가 죽고 세월이 한참 흐른 뒤 18999월 고손인 제26대 왕 고종에 의해 장조로 추존되었다.

영조는 소주방에서 쌀을 보관하는 뒤주를 가져오라고 명했다. 그리고는 사도세자를 서인으로 폐하고 뒤주에 가두었다. 사도세자는 이 안에 들어가 쪼그리고 앉아 땡볕에서 8일 동안 아무 것도 먹지 못한 채 똥오줌 범벅이 되어 죽어갔다.”

이 현장을 생각하니 무서운 생각이 든다. 사도세자만큼 드라마틱한 삶을 산 왕세자도 드물다. 오죽했으면 소설이나 영화에서 가장 많이 그의 삶을 조명했을까 싶다.

 

대한제국 최초이자 유일한 황태자

의민황태자는 조선의 마지막 왕 순종의 이복동생으로 189710월 고종에 의해 조선이 대한제국으로 선포된 후 황태자로 책봉되었다. 우리는 그를 의민황태자 아니 영친왕이라 부른다. 하지만 그는 대한제국이 일본과 합방되어 나라를 빼앗기게 되면서 대한제국 최초이자 마지막 황태자가 되고 말았다. 조선의 유일한 황태자를 만나본다.

 

단명한 왕세손

사도세자의 아들이자 영조의 손자인 의소세손 이정, 의민황태자의 아들이면서 고종의 손자인 황세손 이진은 비운의 왕세손들이다.

의소세손은 영조의 장손으로 태어난 지 3세에 세상을 떠났고, 황세손 이진은 의민황태자와 이방자 여사 사이에서 태어난 대한제국 유일한 황세손이지만 출생한 지 8개월 남짓도 안 되어 갑작스럽게 생을 마감했다. 의소세손 이정과 나라를 잃은 슬픔에 더하여 독살설까지 제기된 단명한 왕세손 이진을 만나본다.

조선에서 왕자로 태어난 그들은 과연 몇 명이나 행복을 느끼며 살다가 이 세상을 떠났을까? 왕세자나 왕세손으로 책봉되어 왕이 된 왕자들 역시 행복했을까?

조선왕조 27명의 왕들 중 14명만 왕을 낳았고, 13명은 왕을 낳지 못했다. 왕을 낳은 14명 중에서 5명은 2명의 아들을 왕위에 올려 19명만 왕의 아들이 왕위에 올랐다. 나머지 8명은 추존왕과 대원군의 아들들이다. 그러니 왕세자나 왕세손으로 책봉되지 않고, 왕이 된 경우가 많을 수밖에 없다.15

 

의안대군 방석은 부모의 뜻에 따라 왕세자로 책봉되었지만 무시무시한 이복형 방원에 의해 폐세자가 되어 잔인하게 살해되었다. 어쩌면 부모의 과잉 사랑이 그의 목숨을 일찍 앗아가게 한 것은 아닐까. 아버지 태조가 어머니 신덕왕후 강씨에게 푹 빠져 원비 소생 자식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해 이 같은 비극을 초래하게 만든 것이다.31

 

양녕대군의 실덕失德이 계속되자 바로 아래 동생 효령대군은 장차 자신에게 기회가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깊이 들어앉아 모든 걸 삼가고 글 읽기에 몰두했다. 양녕대군이 마침 효령대군의 방을 지나다 이를 보고 어리석다. 너는 충녕대군에게 성덕聖德이 있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효령대군은 크게 깨달은 뒤 그 길로 자주 가던 절에 달려가 온종일 북을 두드렸다고 한다.43

 

폐왕 연산군의 아들 이황과 광해군의 아들 이지만 그야말로 찬밥 신세가 되어 죽어서도 대접을 못고 있다. 그들은 묘도 선물 받지 못했다. 그 누구도 그들의 무덤을 조성해주지 않았다. 무덤조차 없으니 참으로 애달프다. 아버지가 폐왕이 되어 더는 왕의 아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비록 폐세자지만 광해군의 유일한 아들이니만큼 광해군 묘 부근으로 옮겨 묻어주지 그랬나 싶다.

폐세자가 된 그들의 아버지 연산군은 119개월, 광해군은 151개월이나 왕위에 올라있었는데도 겨우 초라한 묘를 선물 받았다. 그러니 왕세자의 자리에 있었던 이황과 이지의 묘가 남아있을 리 없다. 그들은 후손들의 관심에서도, 역사 속에서도 점점 더 희미해지게 되었다.

묘조차 남아있지 않은 폐세자 이지의 꿈을 송두리째 앗아가게 만든 아버지 광해군은 문성군부인 류씨와 함께 나란히 잠들어 있다. 광해군의 소원대로 할머니 공빈 김씨(선조의 제1후궁)의 성묘와 가까이에 묻혔다.466~67

 

사람은 죄짓고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기는 어렵다. 그러니 의경세자도 아버지로 인해 왕위에서 쫓겨난 단종 생각에 마음 편할 날이 없었을 것이다. 거기다 첩첩산중 강원도 영월 청령포로 유배를 갔으니 그래도 할아버지 세종과 할머니 소헌왕후 심씨에게는 같은 손자들인데 어찌 탈이 안 나겠는가. 의경세자도 연산군 아들 폐세자 이황과 광해군 아들 폐세자 이지와 마찬가지로 아버지를 잘못 둔 비운의 왕세자였다. 그는 아버지 세조가 피를 나눈 삼촌들은 물론 집현전 학자들 대부분을 살해했음에도 폐왕이 되지 않은 덕분에 폐세자가 되지 않아 살해당하지 않은 것만 해도 천운이 아닐까 싶다.85

 

인조는 8년 전 소현세자가 인질로 끌려갈 때 통곡하며 지금의 일산까지 배웅했다고 전한다. 그리고는 청나라 사신에게 아들이 추위를 많이 타니 온돌방에 재워 달라는 부탁까지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따뜻했던 아버지는 어디로 가고 아들을 죽였다는 의심을 받는 관계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104

 

안타깝게도 효장세자가 혼례를 치르던 날 설사병에 걸려 회복하지 못한 채 두 달 만에 세상을 떠났다고 실록은 전한다. 어찌 이런 불상사가 일어났는지 모르겠다. 그때 효장세자가 사경을 헤매자 영조는 곤룡포까지 벗어던지고 그를 끌어안은 채 왕위라도 내놓을 테니 왕세자만은 구해 달라고 울부짖었다고 한다. 영조에게는 그때까지 적자가 한 명도 탄생하지 않았으며 후궁 소생으로도 효장세자가 유일한 아들이었다.129

 

그는 또 옷에 대한 광증 중 하나로 옷 갈아입기를 무서워하는 의대병衣帶病이라는 질병에도 시달렸다. 어렵게 장만한 옷이 자신의 마음에 안 들면 새 옷이어도 그냥 벗어 불태워버리고, 마음에 들면 그 옷이 다해지고 찌들어도 좀처럼 갈아입지 않았다고 한다. 동궁전에 나오는 예산은 별로 없는데 수시로 옷을 만들어 바쳐야 했던 혜경궁 홍씨도 이래저래 마음고생을 많이 한 모양이다. 그 당시 그녀는 친정의 도움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사도세자의 병증에 대한 기록은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한중록등 여러 곳에 나와 있다. 그의 장인 홍봉한도 사도세자의 병증에 대해무엇이라고 꼭 꼬집어 말할 수 없는 병이 아닌 것 같은 병이 수시로 발작한다.”고 했다.172

 

영친왕은 일본에 끌려가지만 않았다면 조선의 여인과 가례를 치렀을 것이다. 1907년 그가 일본에 끌려가기 전 약혼한 여인이 있었다. 영친왕의 약혼녀 이름은 민갑완(1897~1968)이다. 그녀는 명성황후 민씨의 친족이었던 승후관 민영돈의 딸로 11세에 왕세자빈으로 간택되었다. 그녀는 1501의 경쟁을 뚫고 왕세자빈으로 간택되어 약혼 선물까지 받은 비운의 왕세자빈이다. 1962년 영친왕의 약혼녀 민갑완에 대한 이야기가 백년한百年恨이란 책으로 출간되었다. 그녀의 파란만장한 삶을 담은 이 귀중한 책은 민갑완 자신이 구술하고 조카딸이 썼다. 그녀는 간택이라는 허울 좋은 인간의 계약으로 말미암은 공방생활 50년의 역사는 가시밭길 바로 그것이었다.”고 자신의 인생을 한 마디로 표현했다. 책이 출판된 이듬해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그녀가 구술하지 않고 세상을 떠났다면 이 안타까운 이야기는 알려지기 어려웠을 것이다. 다행히 자신의 기구한 삶을 역사와 함께 되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222

 

지은이

 

홍미숙

1959년 경기 화성에서 태어나 1995년 수필 <어머니의 손>으로 문단에 데뷔하면서 적극적으로 작품 활동을 펼쳤다.

신문을 비롯한 여러 문학전문지에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그동안 출판한 작품집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영광도 차지했으며, 교보문고에서 화제의 신간으로 선정되어 몇 달 동안 특별 전시 판매되었고, ‘부모님을 위한 사랑 가득한 도서일상의 행복을 찾아서란 테마북으로도 선정·판매되었다. 무엇보다 전국수능모의고사와 외고입시 문제 등에 작품의 전문이 실리면서 지문으로 출제되었다. 2003년부터 국정교과서에 이어 검인정교과서(중학교 3학년 2학기 국어교과서)에 작품 신호등이 수록되었다.

KBS <주부 세상을 말하다>라는 생방송 프로에서 작가로서의 행복론에 대한 이야기를 담담하게 펼친바 있다. 요즘은 역사공부를 하면서 역사책을 쓰고 있으며, 일반 독자와 학생을 대상으로 학교 및 도서관, 평생학습원, 국방대 등에서 역사 에세이와 수필 쓰기 강의를 하고 있다.

수필집으로 그린벨트 안의 여자, 추억이 그리운 날에는 기차를 타고 싶다, 마중 나온 행복, 작은 꽃이 희망을 피운다, 희망이 행복에게, 나에게 주는 선물, 웃음꽃 피다등이 있으며 역사책으로 왕 곁에 잠들지 못한 왕의 여인들, 사도, 왕이 되고 싶었던 남자, 조선이 버린 왕비들이 있다.

 

 

목차

 

서문 왕위 서열 1위가 물거품이 되어버리다니

 

 

1장 폐세자의 삶이란 억울하기 짝이 없나니

 

조선 최초로 살해된 왕세자 되다 / 의안대군 이방석(1대 왕 태조의 아들)

14년 동안의 왕세자 생활이 물거품 되다 / 양녕대군 이제(3대 왕 태종의 아들)

할머니와 아버지를 잘못 만나 살해되다 / 폐세자 이황(10대 왕 연산군의 아들)

유배지에서 왕세자빈과 땅굴을 파다 죽음을 맞다 / 폐세자 이지(15대 왕 광해군의 아들)

 

 

2장 요절한 왕세자를 만나다

 

사촌동생인 단종과 같은 해에 세상 뜨다 / 의경세자 이장(도원군, 추존왕 덕종, 7대 왕 세조의 아들)

적통의 왕위 계승을 무너트리다 / 순회세자 이부(13대 왕 명종의 아들)

새로운 세상에 눈을 떠 죽음을 앞당기다 / 소현세자 이왕(16대 왕 인조의 아들)

종묘 사직에 기여한 바 없는데 / 효장세자 이행(경의군, 추존왕 진종, 21대 왕 영조의 아들)

간절한 기다림 속에 태어나다 / 문효세자 이향(22대 왕 정조의 아들)

대리청정 중에 세상을 떠나다 / 효명세자 이영(추존왕 문조, 23대 왕 순조의 아들)

 

 

3장 폐세자 된 후 복위된 왕세자

 

사도思悼! 생각하면 슬프다 / 사도세자 이선(장헌세자, 추존왕 장조, 21대 왕 영조의 아들)

 

 

4장 대한제국 최초이자 유일한 황태자

 

일본인으로 살다 고국에 돌아와 숨을 거두다 / 의민황태자 이은(영친왕, 26대 왕 고종의 아들)

 

 

5장 단명한 왕세손

 

할아버지의 통곡 속에 잠들다 / 의소세손 이정(21대 왕 영조의 손자, 사도세자의 아들)

생후 9개월 만에 의문사하다 / 황세손 이진(26대 왕 고종의 손자, 의민황태자의 아들)

 

 

글을 마치며 간추린 조선왕조이야기

 

부록 1 조선왕계도

부록 2 조선의 왕릉 42

부록 3 조선의 원 14

부록 4 조선의 대원군 묘 3

부록 5 태조의 4대조 왕릉 4

부록 6 조선왕릉 상설도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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